최근 이화여대 부정입학 논란, 조선 시대엔 과거시험 부정이 말썽, 세종, 부정행위한 사람 엄중 처벌… 곤장 치고 유배… 관직 등용 금지
숙종 때 두 차례 대규모 부정행위… 백성들 "돈 있으면 합격하나" 한탄


최근 이화여대에서 체육 특기생의 부정 입학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내 대학들의 체육 특기생에 대한 학사 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왔어요. 이화여대에서는 입학 과정에서부터 면접관들이 특정 학생에게 특혜를 주어 입학을 시키고, 입학 후에도 교수들이 지나치게 후한 학점을 주는 문제들이 드러나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다른 대학에서도 체육 특기생들이 출석이나 과제물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총장과 교수의 재량에 따라 학점을 후하게 줄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고 하고요.

조선시대에도 이번 일과 비슷하게 과거 시험 중 시험에 응시한 유생이나 시험을 감독하는 관리가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일들이 있었답니다. 이런 죄를 지은 사람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요?

◇성균관과 과거 시험
성균관은 고려 말에 설립되어 조선시대에도 운영된 최고 국립 교육기관이었어요. 조선시대 양반 자제들은 성균관을 거쳐 고급 관리가 되기 위해 유학을 열심히 공부했다고 합니다. 고급 관리로 관직에 나아가려면 과거 시험의 대과(大科)에 합격해야 했는데, 대과 중에서도 성균관 유생만을 대상으로 치르는 '알성시(謁聖試)'라는 특별 시험이 고위 관직으로 나아가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었어요.
양반 자제들은 과거 시험의 문과 초시에 해당하는 '생원진사시'에 합격해야만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었답니다. 이렇게 보면 생원진사시는 오늘날의 대학 입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 외에 사학(四學)에 다니는 15세 이상 학생 중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성균관 선발 시험에 합격한 경우, 3품 이상 관리의 자제로 소학에 능통한 사람 등에게 입학 자격이 주어졌지요.

◇부정행위를 엄격히 다룬 세종
양반 자제 중에서 고위 관리가 되겠다는 욕심에 과거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었어요. 조선 제4대 왕 세종 때인 1447년 3월에 의정부는 "다른 사람을 고용해 대신 과거 시험을 보게 하고, 시험을 관장하는 관리들이 친한 사람을 뽑으려 부정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알지 못하고 있다"며 부정행위의 실상을 임금에게 고하였지요.
그와 동시에 의정부는 과거에 응시한 사람이 부정행위를 저지른 경우에는 곤장 100대에 3년간 중노동을 시키는 벌을 내리고 향후에도 영원히 관직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했어요. 부정행위에 관여한 관리도 이와 같은 처벌을 받도록 했고요. 이렇게 엄격한 부정 방지 방안이 마련되었는데도 조선 중기 무렵 과거 시험에서 대규모 부정행위가 드러나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답니다.

◇조선을 뒤흔든 커닝 사건들
조선 제19대 왕 숙종 때인 1699년,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특별히 치러지는 '증광시(增廣試)'라는 과거 시험이 열렸어요. 과거 시험 결과 34명이 관리에 합격을 하였는데, 얼마 후 이 과거 시험에서 대규모 부정행위가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어요. 시험에 합격한 34명 중 15명이 시험지를 바꿔치기 하거나 시험을 감독하는 관리에게 청탁을 해 제출한 답안지의 내용을 고치도록 한 거예요.
이에 시험은 아예 무효가 되었고, 부정행위를 저지른 유생들은 3년 동안 강제로 병역에 복무하는 처벌을 받았어요. 부정행위에 가담한 관리들은 모두 외딴섬으로 유배되었고요. 이 사건은 1699년 기묘년에 과거 시험에서 부정행위(과옥)라는 중대한 범죄가 벌어졌다고 해서 '기묘과옥'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13년 뒤인 1712년에 또다시 과거 시험에서 대규모 부정행위가 벌어졌어요. 시험 감독을 맡은 관리들이 자기 친구의 아들이나 가까운 친지에게 미리 시험에 출제될 문제를 알려 준 것이었죠. 이를 임진년에 일어난 과옥이라 하여 임진과옥이라 부릅니다.
이때에도 부정행위에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엄한 처벌을 받았지만, 연이어 과옥이 벌어지자 백성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돌았다고 해요. "요즘은 돈만 있으면 어사화(御賜花·장원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내려준 종이꽃)도 얻을 수 있구먼!"

[사학(四學)이란?]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서울의 중앙과 동·서·남 4곳에 세운 교육기관으로 4부학당(四部學堂)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성균관과 달리 규모가 작고 공자를 모신 사당(문묘)을 두지 않았지요. 하지만 그 외 교육 방침이나 교육 내용은 성균관과 비슷했다고 합니다. 유교를 다룬 책인 소학과 사서를 중심으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15세가 되면 승보시라는 시험을 치러 성균관에 입학하도록 하였지요.
사학에 재사(齋舍)라고 부르는 기숙사를 마련하고 각 학당의 학비는 모두 국가에서 지원해 주었어요. 대신 국가에서는 성균관과 예조·사헌부 관리들로 하여금 사학의 운영을 감독하도록 했답니다. 사학의 정원은 100명 정도로 보통 양반이나 평민의 자제 중에서 우수한 자를 뽑아 진사나 생원과에 응시하기 위한 교육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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