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부터 농업 중심으로 살던 조상… 인공 저수지 만들어 가뭄 극복해
백제 비류왕 때 만든 김제의 벽골제
'세종실록…' 기록된 제천 의림지 등 우리나라서 만든 오래된 저수지예요

전국에 장맛비가 속속 내리지만, 중부 지방을 비롯해 일부 지방은 아직도 가뭄에 시달리고 있어요. 가뭄은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은 메마른 날씨 탓에 물 공급이 부족한 시기를 말해요. 가뭄이 들면 농사를 비롯해 공업에 필요한 물 부족 등으로 산업에 큰 피해를 줄 뿐 아니라 생활에도 큰 불편을 주지요.
농업을 산업의 중심으로 삼았던 우리 조상은 가뭄을 가장 큰 자연재해 중 하나로 여겼어요. 그래서 농사를 지을 때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비가 내려 가뭄이 들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고,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곳곳에 저수지를 만들었어요. 그렇다면 우리 역사에서 저수지가 처음 등장한 때는 언제일까요?

◇백제 비류왕 때 벽골군에서 벌어진 대규모 공사
330년, 벼가 많이 생산되기로 이름난 백제 땅 벽골군에서 큰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어요. 벽골군은 백제가 마한을 정복하며 차지하게 된 지역으로 그전까지는 벽비리국이라 불린 마한에 속했던 작은 나라였지요. 벽골군이란 벼의 고을이란 뜻이에요.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 지방이죠.
"폐하, 벽골군에서 기쁜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드디어 저수지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하옵니다."
"참으로 기쁜 일이로다. 이제 남부 지방에서 벼를 훨씬 더 많이 생산해 우리 백제가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하옵니다. 물을 막아두기 위해 쌓은 둑의 길이가 무려 1800보(步)나 된다고 하옵니다."
"장하다. 벽골군에 저수지를 만드는 일로 수고를 한 백성에게 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백제 제11대 왕인 비류왕 27년에 있었던 일로 그때 만들어진 저수지가 바로 김제의 벽골제라는 저수지였어요.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로 손꼽히지요.


◇신라의 음악가 우륵이 저수지를 쌓다?
신라 진흥왕 때인 551년 무렵, 가야국에서 가야금이란 악기를 들고 신라에 망명한 우륵이란 음악가가 있었어요. 우륵이 가야금을 안고 지금의 충북 지방에서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니다 제천 지방에 머무르게 되었지요.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이곳에서 노닐며 가야금이나 타야겠다."
우륵이 머문 곳은 제천의 용두산에서 개울물이 흘러내리는 돌봉재라는 곳이었어요.
'이곳의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들면 좋겠구나!'
우륵은 돌봉재 옆의 개울물을 막고 둑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었고, 사람들은 그 저수지를 숲 속에 있는 연못이라 하여 임지(林池)라고 불렀어요. 그로부터 700년쯤 뒤에 박의림이라는 현감이 군민을 동원하여 저수지를 좀 더 튼튼하게 새로 쌓았다고 해요. 고려 성종 때인 992년에 전국 군현의 명칭을 새로 바꿀 때 제천을 의원현 또는 의천이라 하였는데 임지에도 '의'자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고요.


◇삼한 시대에 저수지를 만들다벽골제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해요. 삼국사기에는 신라 흘해왕 21년(330)에, 삼국유사에는 흘해왕 20년(329)에 처음으로 벽골제를 쌓았다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당시 이 지역은 신라의 영토가 아닌 백제 영토였어요.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백제 비류왕 때 벌어진 일을 신라의 일인 것처럼 잘못 기록한 것으로 짐작하고 있지요.
우륵이 의림지를 쌓았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온 이야기이고, 역사적인 기록으로는 조선시대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 처음으로 의림제라고 소개돼 있어요. 역사학자들은 의림지가 처음 세워진 때를 우륵이 충북 지방에 머물 때보다 훨씬 전인 229년 무렵이나 그 이전으로 짐작하기도 해요.
김제의 벽골제, 제천의 의림지와 더불어 경남 밀양의 수산제, 경북 상주의 공검지 등이 삼한 시대에서 삼국 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세워진 저수지로 알려졌지요. 삼한 시대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고대 국가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기 전인 기원 전후부터 200~300년까지를 말해요.

◇청동기 시대에도 저수지를 만들다?
삼한 시대에 이미 한반도 남부에 자리 잡고 있던 마한·진한·변한 이렇게 삼한에서는 활발하게 벼농사를 지으며 저수지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삼한에서는 지배자 중 세력이 큰 사람의 칭호를 신지와 견지라고 불렀는데, 이 명칭은 물을 관리하는 권한을 갖고 있음을 뜻하였다는 주장도 있어요. 곧 저수지를 관리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고요.

그런가 하면 2005년에 경북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라는 곳에서 청동기 시대의 저수지로 짐작되는 터가 발굴되어 큰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이 유적을 발굴한 조사단은 이 저수지가 적어도 2600여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했어요. 이미 청동기 시대에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인공적으로 농경지에 공급해 농사를 지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지요. 이처럼 우리 조상은 고대부터 가뭄을 이겨내려 애를 썼고, 그에 대한 방법으로 토목 기술을 발달시켜 거대한 저수지를 만들었던 것이랍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예부터 우리 조상은 가뭄이 들면 '기우제'라는 제사를 지내며 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바랐어요. 조선 시대에도 민간에서는 물론이고 나라에서도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지요. 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기우제를 지낸 장소로 대표적인 곳은 어디가 있을까요? 찾아봅시다.
(조선일보, 2016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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