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낭산 기슭서 최근 발굴한 효성왕릉 추정 석물들 복원
영국 스톤헨지 방불케 하는 장대한 규모와 위용 돋보여
신라 왕릉 축조과정 한눈에 볼 수 있는 새 명소로

[한겨레]

경북 경주 낭산 기슭 아래 원래 윤곽대로 복원되어 늘어선 옛 신라왕릉의 석물들. 뒤로 낭산 자락과 황복사터 석탑이 보인다.

천년 고도 경주에 신라판 ‘스톤헨지’가 나타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 스톤헨지를 방불케 하는 1400여년 전 신라 왕릉의 대형 석물들이 최근 경주 낭산 기슭에 옛 모습대로 복원돼 화제다. 지난 2월 낭산 동북쪽 황복사터 부근의 경작지에서 발굴된 신라 왕릉급 무덤의 대형 석물 40여점이 주인공이다. 이 유물들을 발굴했던 성림문화재연구원이 지난 4월 유적 바로 옆에 석물들을 옛 원형대로 아귀를 짜맞춰 이어놓고 현장 공개를 시작했다.

공중에서 무인기로 찍은 낭산 왕릉 석물 복원 현장.

국내에서 왕릉 석물은 2009년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오른 조선시대 왕릉군의 문무인상과 혼유석, 망주석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얼개는 다소 다르지만, 경주 도심과 주변에 흩어진 신라 왕릉들도 정교하고 장대한 석물들을 써서 천년 왕조의 위엄과 권위를 과시하는 틀거지를 갖췄다. 잘게 깬 돌들을 펴놓고 그 위에 복원한 낭산 현장의 석물들은 이런 신라 왕릉의 얼개와 축조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지름 22m에 달하는 왕릉의 전체 규모는 물론 탱석, 면석, 지대석, 상대갑석 등 봉분 둘레를 싸면서 망자의 혼을 지켰던 신라 석물들의 면면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치밀한 수학적 곡률 계산에 따라 면석과 상하대 갑석의 앞면을 부위에 맞춰 둥그런 원호의 곡면으로 다듬는 ‘라운딩 기법’을 구사한 것이 눈에 띈다. 전체 석물들이 다 수습된 것은 아니지만, 발굴된 석물들을 맞춰 보니 봉분을 지탱하는 탱석과 둘레를 싸는 면석이 각각 36개씩 딱 들어맞게 짜인 것으로 드러났다. 박광열 원장은 “발굴된 석물들을 논두렁에 마냥 방치할 수 없어 자비로 모아 복원하고 연구자와 시민들에게 내보이기로 했다”며 “고도의 수학 지식이 뒷받침된 신라인의 건축·토목 기술 실상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둥그런 곡선의 이음새로 복원된 왕릉 석물들 세부. 정밀한 곡률 계산에 따라 앞쪽은 둥글게 가공했고, 뒤쪽은 봉분에 고정시키기 위해 쐐기꼴로 다듬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연구원 쪽은 이 석물들이 신라 34대 효성왕(737~742)의 왕릉을 두르려고 만들었던 호석 시설의 일부로 보고 있다. 공사가 중단되면서 한동안 방치됐으며 이후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 초 관청 등의 건물 기반재 용도로 달리 쓰이게 됐다는 것이다. 박광열 원장은 지난 2월 발굴 설명회에서 “불교신자였던 효성왕이 유언대로 유골을 화장함에 따라 왕릉 공사를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더욱 흥미로운 건 이렇게 복원해 놓았지만, 정작 무덤을 조성하려 한 터는 아직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연구원 쪽은 애초 석물이 발견된 유적 옆 공터였던 현재 복원 현장을 왕릉 터로 지목하고 조사했으나 흔적을 전혀 찾지 못했다. 박 원장은 “개당 1톤에서 1.5톤에 달하는 무거운 석물들을 먼 곳에서 옮겨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유적에서 좀더 동쪽에 있는 보문들 어딘가에 만들다 만 왕릉 터가 있지 않을까 짐작한다”고 했다. 연구원 쪽은 다음달부터 석물이 출토된 곳과 황복사탑 사이에 있는 경작지 4300여㎡(1300여평)를 2차로 조사해 좀더 상세한 전모를 밝혀낼 계획이다. (한겨레, 2017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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