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먹으면 영(0)칼로리~." 기분 좋은 거짓말에 잠시 속아넘어가는 건 자유다. 그러나 유독 긴 이번 추석 연휴에 함부로 이성의 끈을 놓았다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후폭풍과 마주할지 모른다. 송편 1개당 50㎉(1인분 338㎉), 녹두빈대떡 100g에 194㎉, 갈비찜 200g에 531㎉, 식혜 한 잔에 250㎉…. 한끼 만에 하루 권장 섭취량을 훌쩍 넘기는 건 일도 아니다.

여름내 없던 입맛이 돌아오고 식욕을 참기 힘든 계절, 가을이 왔다. 해가 빨리 떨어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즈음이면 몸이 더 간절히 음식을 부르는 듯하다. 실제로 사람들이 낮의 길이가 짧아지는 가을에 봄보다 하루 평균 200㎉를 더 섭취하고도 쉽게 허기를 느낀다는 1991년 미국 조지아주립대의 연구 결과도 있다. 햇빛을 많이 쬐지 못해 세로토닌이란 호르몬이 줄어드는 것도 식욕이 더 당기는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언제까지 호르몬의 노예로 남을 텐가.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지만, 우리는 변방의 말이 아니다. 눈앞의 기름진 음식들에 현혹되기 전에 정신의 고삐를 바짝 붙잡고 이번 연휴만큼은 사람답게 의지력을 발휘해보자.

◆ 소식하면 노화 시계 천천히 간다

칼로리 섭취를 줄이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건 이제 상식이 됐다. 그러나 과연 소식(小食)으로 더 오래 살 수 있느냐는 건 과학계의 여전한 논쟁거리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열량을 줄이면 수명 연장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각종 실험을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직접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아니지만, 닮은꼴인 영장류를 통해 칼로리 다이어트의 효과를 엿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칼로리를 제한하면 '생체시계(Biological clock)'가 천천히 가 노화 속도가 느려지고 수명이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생체시계란 말 그대로 몸속 시간의 변화를 감지하는 지표다. 타고난 유전자가 어떻게 후천적으로 발현하는지에 영향을 미친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이 빨라지면 나이와 밀접한 유전자들이 분주히 작용하고, 노화에 따른 질병과 신체 기능 저하가 나타나게 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바이오의학연구소(IRB)의 아즈나 베니타 박사는 지난달 '셀(Cell)'에 게재한 논문에서 "저칼로리 식단 조절은 24시간 주기로 돌아가는 줄기세포의 생체시계를 '젊게' 유지시키고, 생체리듬이 깨져 노화가 진행되는 것을 최대한 늦춘다"며 "다만 영장류와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것이라 인간의 장수에도 기여할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태엽이 낡으면 시계가 빨리 가 리듬이 깨지는데, 소식을 하면 시계가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단, 사람의 경우 다이어트를 자발적으로 지속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괜히 기초대사량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했다 '역효과'가 날 수 있어 단순비교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 다이어트한 원숭이, 7살 젊어져

이달 14일 미국 템플대 의대 연구진도 과정은 다르지만, 똑같은 결론의 연구를 내놨다. 생쥐와 붉은털원숭이를 대상으로 칼로리 섭취를 제한했더니 생체시계인 'DNA 메틸화'가 지연돼 수명이 늘어난 것. 실험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실렸다. 강제 다이어트를 한 동물들이 좋든 싫든 더 오래 살았다. DNA 메틸화는 유전자에 메틸 그룹이 결합해 일어나는 화학적 변형으로 체내 조직의 노화 수준을 파악하는 대표적인 생체시계다. 나이가 들어 DNA가 메틸화되면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암부터 신경 퇴행성 질환에 이르기까지 질병에 걸릴 위험도 커진다.

이 실험에서 연구진은 붉은털원숭이들의 칼로리 섭취량을 7~14세일 때부터 대조군보다 30% 줄였다. 이후 원숭이들이 22~30세가 돼 신체검사를 했더니 칼로리를 제한한 집단이 자유롭게 먹은 대조군에 비해 DNA 메틸화 정도가 현저히 덜했다. 이 같은 차이는 혈액부터 비장, 골수, 간, 신장, 소장, 대장에 이르기까지 몸 구석구석에 걸쳐 나타났다. 혈액검사를 해봤더니 다이어트 원숭이들의 생체 나이는 20세로 실제보다 7세나 젊게 나타났다. 소식만으로 회춘한 셈이다.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해도 결과는 같았다. 태어난 직후인 0.3세 때부터 2.7~3.2세가 될 때까지 칼로리 섭취를 40% 제한했더니 생체 나이가 평균 0.8세로 실제보다 2세가량 어렸다. 논문 주저자인 메가와 신지 미국 텍사스대 의대 교수는 "상당 기간 음식 섭취를 줄인 원숭이와 생쥐에게서 노화와 직결된 DNA 메틸화가 더디게 진행됐다"며 "칼로리 제한은 후성적으로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쳐 수명 연장을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 "칼로리 제한 시 오래 산다" 논란 끝

칼로리와 수명의 연관성을 처음으로 제기한 것은 2009년 미국의 위스콘신국립영장류연구소(WNPRC)가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였다. 당시 위스콘신대는 붉은털원숭이 76마리를 20년간 연구했더니 칼로리 섭취를 30% 줄인 원숭이가 대조군보다 수명이 길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2012년 '네이처'에는 이와 완전히 상반된 연구가 실렸다. 국립노화연구소(NIA)가 붉은털원숭이 85마리를 이용해 23년간 연구했더니 칼로리 섭취를 30% 낮춘 원숭이들의 수명이 대조군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똑같은 동물을 대상으로 똑같이 칼로리를 제한했는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 같은 모순에 대해 미국 텍사스대 노화연구자 스티븐 오스태스 박사는 "두 연구에서 식단의 구성, 대조군의 식사량, 실험을 시작한 나이 등에 차이가 있었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위스콘신대가 사용했던 사료는 설탕 비율이 28.5%에 달했던 반면 국립노화연구소의 자연식 사료는 설탕 비율이 3.9%에 불과했다. 또 위스콘신대의 대조군 원숭이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었으나, 국립노화연구소의 대조군은 엄격하게 통제된 정량만을 먹었다.

올해 들어서야 비로소 두 연구진은 합의점을 찾았다. 지난 1월 공동 데이터 분석을 끝내고 조건을 통일해 "칼로리를 제한하면 수명 연장 효과가 있다"고 최종 발표한 것이다. 칼로리 섭취를 30% 줄인 원숭이의 기대수명은 암컷이 30세, 수컷이 28세였다. 대조군의 평균 기대수명인 26세보다 수년간 더 살았다. 특히 중·장년(16~23세)부터 식이 조절에 들어간 집단의 경우 수컷의 기대수명은 35세에 달해 평균보다 9세나 길었다. 아울러 칼로리 섭취를 제한한 집단은 암 발생률도 15~20% 정도 낮았고, 당뇨병과 뇌졸중 등 노화에 따른 질병도 더 늦게 나타났다.

참을 수 없는 식탐 주범은 '뇌'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몰라서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몸의 호르몬이 뇌에 "배고프다" "배가 차지 않았다" "지방을 저장하라" 신호를 외치니 뇌의 명령에 따를 뿐이다. 인간이 느끼는 포만감과 허기 모두 호르몬의 작용이다. 식욕을 자극하는 호르몬 '그렐린(Ghrelin)'과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 '렙틴(Leptin)'이 대표적인 신호다.

그러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몸에 지방이 쌓일수록,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을수록 인간은 점점 통제력을 상실하고 호르몬의 입김은 강해진다. 식이 조절이 '작심삼일'에 그치는 게 단지 의지력의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지난 14일 일본 자연과학연구기구 기초생물학연구소 연구팀은 비만인 사람이 왜 식욕을 참지 못하는지 정확한 이유를 찾아냈다. 원래 사람이 음식을 섭취하면 식욕을 누르는 '렙틴'이 위장이나 체지방 세포에서 분비된다. 이 렙틴이 뇌에 전달돼 음식물 섭취 중추를 자극할 때 식욕은 자연스럽게 잦아든다.

그런데 살찐 사람의 경우 몸이 렙틴에 대해 내성이 있어 렙틴 농도가 높아도 뇌가 신호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는 게 경험적으로 알려져 왔다. 몸이 렙틴에 저항하기 때문에 식욕이 줄지 않고, 먹어도 먹어도 더 먹고 싶어지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 같은 렙틴 저항성이 생기는 이유가 뇌 속에 생기는 'PTPR'란 효소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기름진 음식을 계속 섭취하고 체내 지방이 쌓일 때 나타나는 이 효소가 렙틴의 작용을 방해한다는 게 골자다. 비만인 사람이 몸에 렙틴이 많은데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다. '배부름'을 잘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연구진은 보통 생쥐와 PTPR 효소가 없도록 유전자 조작한 생쥐에게 생후 16주 동안 고지방 사료를 먹였다. 연구 결과, 지방 때문에 식욕 억제 기능이 마비된 보통 쥐는 점점 살이 올랐고, 효소가 없어 렙틴에 반응한 쥐는 체중이 보통 쥐보다 14%, 체지방은 40% 적게 나타났다.

지방이 많으면 이처럼 식욕 억제 기능은 마비되지만, 식욕 자극 기능은 더 활성화된다. 앞서 2009년 미국 신시내티대 연구팀은 몸속에 기름진 음식이 들어가면 허기를 느끼게 하고 음식 섭취를 유도하는 '그렐린' 분비가 촉진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위장에 있던 '그렐린 활성 효소(GOAT)'가 지방산에 반응하면서 그렐린을 활성화시키고 식욕을 돋운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쥐 실험 결과 GOAT가 많도록 유전자 조작된 생쥐에게 고지방 먹이를 줬더니 비만 효과가 더욱 커졌다. 활성화된 그렐린 호르몬이 음식물을 섭취하고, 지방을 저장하라는 신호를 계속 뇌에 보냈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 온라인판에 나왔다. (매일경제, 2017년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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