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옥, '꽃과 덫 딜레마' 공간격리로 풀어
높은 가지 꽃엔 날아서, 낮은 덫엔 걸어 접근
북미 일부 지역에만 자생하는 식충식물 파리지옥이 꽃가루받이 곤충은 잡아먹지 않는 비밀이 밝혀졌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식충식물은 척박한 토양에서 부족한 영양분을 동물을 잡아먹어 보충하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식충식물도 번식하려면 꽃가루받이를 해 줄 동물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두 가지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식충식물이 자칫 자신의 번식을 도와줄 곤충을 잡아먹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식충식물이 이런 ‘꽃과 덫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파리지옥도 그런 식충식물이다. 19세기부터 독특한 벌레잡이 생태가 알려져 우리나라 등 세계에서 원예종으로 많이 재배한다. 세계에 분포하는 식충식물 600여 종 가운데 먹이를 함정에 빠뜨리는 수동적 방식이 아니라 덫에 이끌린 먹이를 적극적으로 붙잡는 유일한 식충식물로도 유명하다. 미국 연구자들이 처음으로 파리지옥의 먹이와 가루받이 동물을 상세히 조사해 비밀의 일부를 밝혔다.

파리지옥은 식충식물 가운데 유일하게 능동적으로 먹이를 잡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엘사 영스테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곤충학자 등은 과학저널 ‘아메리칸 내추럴리스트’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파리지옥의 개화기 동안 찾아오는 절지동물을 모두 조사한 결과 꽃을 찾는 동물과 먹이가 되는 동물은 거의 겹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파리지옥은 5월 중순∼7월 초 사이 지름 2㎝ 크기의 접시 모양인 흰 꽃을 피운다. 여기에 모이는 곤충은 100종에 이르는데, 가장 개체수가 많고 꽃가루받이를 주로 하는 종은 꼬마꿀벌과의 벌 한 종, 체크무늬딱정벌레, 하늘소류 한 종 등 3종이었다. 반대로 덫에 가장 많이 걸리는 절지동물은 거미, 딱정벌레, 개미 등이었다. 두 집단 가운데 겹치는 종은 거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파리지옥의 꽃(위)과 덫(아래). 공간적인 격리가 꽃가루받이 매개자를 잡아먹는 딜레마를 피하게 한다. 클라이드 소렌슨 제공.

연구자들은 꽃과 덫의 공간적 격리를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파리지옥의 꽃은 덫보다 15∼35㎝ 높은 가지에서 핀다. 곤충이 날아서 접근하기에 쉬운 위치이다. 반면 덫은 낮기 때문에 먹이가 되는 절지동물이 땅바닥에서 걸어서 접근하기에 편하다. 실제로 파리지옥의 꽃을 방문하는 곤충의 87%가 비행능력이 있었지만, 먹이가 된 곤충의 20%만이 비행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꽃이 피는 동안에도 덫은 열려있어 꽃과 덫의 시간적 격리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파리지옥은 개화기 동안은 새로운 덫을 만들지는 않는다. 연구자들은 이번에 조사하지는 못했지만, 꽃과 덫이 냄새나 화학적 신호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파리지옥의 주요 꽃가루받이 매개곤충으로 밝혀진 체크무늬딱정벌레. 엘사 영스테트 제공.

한편, 우리나라 고산 습지에 자생하는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은 덫이 붉은색을 띠어 꽃가루받이 곤충이 접근을 꺼리도록 한다는 사실이 다른 연구자에 의해 밝혀졌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는 먹이 동물도 줄어드는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영스테트는 “이번 연구는 파리지옥의 생태에 관한 기본적인 의문점을 풀어주어 아주 좁고 위태로운 생태계에만 살아남은 이 희귀식물을 보전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이 식물이 가루받이 매개자이자 먹이인 곤충과 상호작용하는 놀라운 형질이 드러났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파리지옥은 노스·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소규모 지역에만 자생하는 1속 1종의 희귀식물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멸종위기종 목록에서 ‘취약종’으로 분류돼 있다.

연구자의 하나인 레베카 어윈 노스캐롤라이나대 응용생태학 교수는 “파리지옥은 자생지에 주기적으로 산불이 나야 번성할 수 있는데, 이런 불이 어떻게 번식의 성공을 이끄는지 등 우리가 이 식충식물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많다”라고 말했다.(한겨레, 2018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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