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재단 소장 이정 작품.."유사한 수준의 그림 여럿 있어"

5만원권 지폐에 있는 '풍죽도'가 보물서 빠진 까닭은.jpg

앞면에 신사임당(1504∼1551) 초상이 그려져 있는 5만원권 지폐 뒷면에는 조선 중기 화가 어몽룡(1566∼?)의 '월매도'(月梅圖)와 탄은(灘隱) 이정(1554∼1626)이 그린 '풍죽도'(風竹圖)가 겹쳐져 있다.

2009년 5만원권 도안이 처음 공개됐을 때 미술사학계에서는 세로로 길쭉한 두 그림을 가로로 눕혔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으나, 두 그림이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회화라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인정했다.

그런데 지난 8일 열린 문화재위원회에서는 이정이 감색 비단에 금니(金泥·금물)로 매화, 난초, 대나무를 묘사한 '삼청첩'(三淸帖)이 보물 지정 예고 대상에 포함됐으나, 또 다른 신청 대상이었던 이정의 풍죽도는 빠졌다.

조선 제4대 임금 세종의 고손인 탄은 이정은 묵죽화(墨竹畵·수묵을 사용한 대나무 그림)의 대가로 평가받는 문인화가다. 이정의 사군자화는 '신묘품'(神妙品)으로 일컬어졌고, 중국인들도 '천하의 보배'로 칭송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보물로 지정 예고된 삼청첩은 이정이 1594년 12월 충남 공주의 별서인 월선정(月先亭)에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쓴 작품으로, 완성된 뒤 문사들의 칭찬이 이어졌을 만큼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유물이다. 그림은 대나무 12면, 매화와 난초가 각각 4면씩 들어갔다.

삼청첩과 함께 보물 지정 여부가 검토된 이정의 풍죽도 또한 수작으로 평가된다. 간송미술관은 2011년 봄 '사군자' 전시를 열면서 가로 71.5㎝, 세로 127.5㎝ 크기의 이 풍죽도를 간판으로 내세웠다.

당시 백인산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탄은의 묵죽화 중에서도 절정의 기량과 최상의 품격이 돋보이는 걸작"이라며 "역대 제일의 묵죽화가가 그려낸 최고의 작품이니 우리나라 최고의 묵죽화라 해도 지나친 찬사가 아닐 것"이라고 평가했다.

백 실장은 자신의 저서에서도 이정의 풍죽도를 '세찬 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의 절개'에 비유하면서 그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이처럼 극찬을 받은 풍죽도가 보물 지정 예고 대상에서 제외된 이유는 무엇일까.

조사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이정이 성취한 묵죽화의 높은 경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작임은 틀림없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비슷한 규모의 화면에 풍죽 외에도 우죽(雨竹)이나 설죽(雪竹)을 그린 이정의 작품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 그림은 제작된 연도를 알 수 없지만, 완성된 시점을 유추할 수 있는 유사한 수준의 회화가 있다는 점을 들어 희소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즉 풍죽도가 탁월한 작품임은 분명하지만, 이정이 남긴 수작이 여럿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그림만 보물로 지정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학계 관계자는 "보물은 유형문화재 가운데 중요한 것을 말하는데, 풍죽도처럼 비슷한 수준의 유물이 상당수 있거나 비교할 만한 다른 작품이 없어서 가치를 입증하기 힘들 때는 지정되지 않기도 한다"며 "시간이 흐르면 재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정의 삼청첩과 풍죽도는 모두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품이다. 문화재청은 간송재단과 2016년 10월 문화재 보존과 관리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지금까지 겸재 정선의 산수화와 신윤복의 '미인도' 등을 보물로 지정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업무협약 때 두 기관이 합의한 문화재 37점에 대한 보물 지정 조사는 일단 마쳤다"며 "이후에도 간송재단의 문화재 지정 조사가 원활하게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연합뉴스, 2018년 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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