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녀부터 1945년까지 13대 143년 통치, 인구 40만 명, 교육도시, 평균연령 28세 국민 80%가 35세 이하, 후에 국립대 출신 호치민. 베트남 최고의 교육도시 후에에 학교가 많다. 한국교민 5명 거주, 베트남 돈은 동으로 부르며 10,000동은 우리 돈 500윈. 다낭의 중심 강은 한강, 후에의 강은 향강, 영로사 탐방. 절 앞으로 향강이 흐른다.

이 절은  틱 쾅툭(釋 廣德)스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유명한 사찰이다. 

고딘디엠 정권은 카톨릭 국가를 만들기 위하여 불교의 사찰을 폐쇄하고, 석가탄신일을 금지 시키며, 토지계획에서 제외하는 등 극심한 탄압으로 스님들이 집단으로 반발하자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많은 스님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발했다.
소신공양! 자신의 몸을 바쳐 부처님과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을 말한다.

베트남이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미국 관리 지역이었던 남 베트남에서 세계 언론이 주시하는 가운데 정부의 불교탄압과 미국 공격의 부당성을 알리는 이 장엄한 의식(?)이 미국 대사관 앞에서 치러진 것이다.
1963년 당사자는 당시 65세의 틱 쾅툭(釋 廣德)스님이다.
이번 베트남 방문길에 이 스님의 흔적을 더듬어 보고자 후에성에 소재한 영로사(靈㳣寺)를 방문했다. 영로사 법당 뒤편에 미 대사관 앞 까지 타고 갔던 차량이 전시되어 있고, 거센 화염 속에서도 의연히 앉아계신 스님의 모습이 있으며, 소신공양 후 화장장에서 6시간을 태웠는데도 타지 않은 심장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당시 세계 언론은 이 심장을 “영원의 심장”이라 불렀고, 현재는 하노이 국립은행에 보관 중이다.)
불길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그의 단아한 모습은, 고도의 물질문명과 최신의 현대무기로 얼마든지 동양을 농단할 수 있다고 여겼던 서양세계를 경악케 하기에 충분 했다. 혹자들은 힘의 논리로 라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미국 대 베트남’의 전쟁에서 미국의 패배는 이미 이때 벌써 예견 되지 않았을까 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님의 장례 행렬에 무려 10만여 명이 거리를 메웠다니 민심이 어디를 향하는지 가름 할 수 있겠다.

이로 인해 베트남에서는 불같은 민중저항운동이 전개됨으로 써, 결국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미국도 물러 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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