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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러시아 최북서단의 항구 도시 무르만스크에 2만1000t 무게의 갈색 선박이 도착했다. 바로 세계 최초의 해상 원자력발전소인 '아카데미크 로모노소프'였다. 배에는 전력을 생산하는 원자로 두 기가 장착돼 있다. 이 해상 원전은 지난달 28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조선소를 떠나 3주 만에 무르만스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핵연료를 장착하고, 내년 여름 극동의 러시아 자치구 추코트카의 페베크로 가서 10만명이 쓸 용량의 전력을 생산할 계획이다. 
세계 각국이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소에 주목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가 당장 화력발전을 대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특히 해상 원전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강화된 안전 기준을 만족하면서도 건설비 경감 등으로 경제성까지 갖춰 차세대 원전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지진해일 문제없고 건설비 줄어

아카데미크 로모노소프는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인 로사톰이 건조했다. 간단히 말해 바다에 떠 있는 원자력 발전소라고 할 수 있다. 배 한가운데에는 KLT-40C라는 이름의 원자로가 두 개 들어 있다. 각각 35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해상 원전은 한 번 핵연료를 장착하면 5년 동안 계속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로사톰은 "화력발전소와 구형 육상 원전에서 전기를 공급받던 페베크의 5만명 인구가 신형 해상 원전의 혜택을 볼 것"이라며 "이로 인해 연간 4만5000t의 화석연료를 절감하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쓰나미 피해 없고, 전력 단가 3분의 1… 원전, 바다로 떠나다1.jpg

아카데미크 로모노소프가 항해를 시작하자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들은 과거 러시아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빗대 "'떠다니는 체르노빌'이 등장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해상 원전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안전성이다. 일단 해상 원전은 미국과 러시아가 1950년대부터 군함과 잠수함, 쇄빙선에서 써온 기술이라 안전성이 검증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처럼 새로운 형태의 원전 사고에도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지진해일(쓰나미)에 발전기와 펌프가 침수되면서 발생했다.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파도는 수심이 얕은 해안에서 속도가 감소한다. 이 상태에서 뒤에 온 파도가 중첩되면 육지에 엄청난 높이의 해일이 발생한다. 결국 지진해일은 육지에서는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지만 바다에서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고가 나도 바로 대응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이필승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전기가 끊기면서 냉각수 공급이 안 돼 사고가 커졌다"며 "바다 한가운데 있는 원전은 사방이 냉각수이기 때문에 펌프로 물을 끌어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경제성도 뛰어나다. 미국 MIT의 자콥 부온지오르노 교수는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지 인터뷰에서 "해상 원전으로 안전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전기 생산 단가도 육지 생산의 3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단 해상 원전은 육상 원전처럼 부지를 확보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지반 공사도 필요 없다. 또 부지에 맞춰 원전의 형태를 바꿀 필요가 없이 주문을 받으면 바로 조선소에서 제작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설계와 허가 기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잠수함 방식 원전도 추진 중
원자력계에서는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해안 80㎞ 이내에 산다는 점에서 해상 원전의 전망이 밝다고 본다. 로사톰은 아카데미크 로모노소프 완공 이후 알제리·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아르헨티나 등 15개국에서 해상 원전 구매 의사를 밝혔다고 발표했다. 러시아는 차세대 해상 원전도 추진하고 있다. 로사톰은 50메가와트 용량의 원자로를 두 개 갖춘 신형 해상 원전도 건조 중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온난화로 북극항로가 열리면서 극동 지역의 경제가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발맞춰 해상 원전으로 극동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중국도 국가 전략 차원에서 해상 원전을 추진하고 있다. 국영 원전 회사인 중국광핵집단도 러시아와 같은 선박형 해상 원전 20척을 2020년대에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착공에 들어간다. 중국은 해상 원전으로 영토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에서 자국 인공섬에 전력을 공급하는 전략적 목적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프랑스는 아예 원전을 바다 밑바닥에 고정해 바람의 영향을 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플렉스블루(FlexBlue)'란 이름의 잠수식 해상 원전은 육지에서 수㎞ 떨어진 수심 60~100m 바다 밑에 50~250메가와트급 규모로 추진 중이다. 
국내에서는 KAIST와 서울대에서 러시아와 프랑스 해상 원전의 중간쯤인 수심 20~30m 바다에 설치하는 해상 원전을 고안했다. 바다 밑바닥에 원전을 고정하고 윗부분은 수면 위로 나오는 착저식 해상 원전이다. 
이필승 KAIST 교수는 "착저식은 선박 형태보다 파도에 강해 대형 원자로를 운영할 수 있다"며 "1400메가와트급 국산 신형 원자로 두 개를 갖춘 형태로 기본 설계를 했다"고 밝혔다. 
건설비는 해상 원전 중 발전 용량이 가장 커 육지 원전과 큰 차이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교수는 "공기(工期) 단축으로 인한 금융 비용 절감과 화력발전소 대체 효과 등을 합하면 4조1712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예측됐다"며 "우리나라는 조선산업과 원전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상 원전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8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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