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진출 한국기업 5000개.. 취준생에게 한국어는 '필수 스펙'

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한국어학당 강의실. 베트남에서 온 어학연수생 20명이 한국 신문을 읽으며 독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날은 미·북 북핵 협상과 주한미군에 대한 기사였다. 학생들은 5~6명씩 조(組)를 짜 남북통일 전망에 대해 토론했다.

후잉 티 뇨(25)씨는 재작년 11월 이 어학당에 입학했다. 베트남에서 다니던 직장도 관두고 2년째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삼성이나 LG 베트남 법인에 취업하는 것이 목표다. 후잉씨는 "또래 베트남 친구들은 한국 기업을 최고의 직장으로 친다"며 "연봉이 높고, 업무 환경도 좋은 편이라 대학 초년생부터 한국 어학연수를 준비하는 친구가 많다"고 했다.

 

베트남 어학연수생 2만명 넘었다, 중국인보다 많네.jpg

 

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수업에서 베트남 학생 트라티 아이 반(28·맨 왼쪽)씨가 한복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올해 2월 어학당에 등록한 그는“한국어를 완벽히 익히고 돌아가 베트남에서 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남강호 기자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입국하는 베트남인 유학생이 늘고 있다. 대학에 어학연수생으로 등록된 베트남인은 2013년 1094명에서 2017년 2만977명으로 4년 사이 20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는 처음으로 중국인(1만4966명)도 넘어 국가 순위로도 1위다. 최장 2년까지 머물 수 있는 연수 비자(D-4)로 입국한다.

어학연수생들은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꼽았다. 올해 6월 기준으로 하노이·호찌민 등 베트남 대도시에 사무실을 둔 한국 기업은 5000여 개다. 삼성전자는 하노이 인근의 박닌·타이응우옌 공장에서 연간 스마트폰 생산량의 절반인 1억5000만 대를 생산한다. 삼성은 지난해 기준으로 베트남에서 16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LG그룹도 북부 하이퐁에 전자, 디스플레이 분야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한국 기업의 투자액이 늘고 직원 모집도 늘자, 베트남 젊은 층이 처우가 좋은 한국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한국어 배우기에 나선 것이다.

 

베트남인 어학연수생 대부분이 20대 중후반이다. 베트남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막 시작했거나, 한국 기업으로 이직을 준비 중이다. 응웬 티 프엉 리(25)씨는 베트남에서 다니던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관두고 서울 한 대학 한국어학당에 들어갔다. "한국 대기업으로 이직하면 이전 직장보다 2배 정도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함께 어학연수 중인 레 티 투 하(29)씨는 "삼성전자 입사를 준비하면서, 직장 구하기 전까진 한국어 통·번역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릴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해 베트남 노동보훈사회부(MOLISA)가 발표한 대졸 평균 월급은 749만동(약 36만원)이었다. 반면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의 대졸 사원 월급은 1200만동(약 58만원)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한국어를 하면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고 했다.

한국 드라마·예능 프로그램이 베트남에서 인기를 끈 것도 한국어를 배우러 오는 이유다. 또 부 홍 령(21)씨는 고교 시절 한국 드라마에 빠져 취미로 한국어 공부를 하다가, 재작년 9월 경희대에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졸업과 동시에 국내 한 방송사에서 2년간 일하게 돼 있다. 다만 계약 기간이 끝나면 베트남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는 "베트남의 여러 기업에서 한국어 능통자를 선호한다는 얘기를 듣고 진로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유학 수요가 생기자 대학들도 베트남인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학령(學齡) 인구는 줄고, 중국인 어학연수생·유학생 수도 정체 상태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6개월~1년간 한국어학당에서 공인 한국어능력시험(TOPIK) 준비를 시키고, 대학 입학 요건인 3급 이상을 받으면 학생 비자로 전환해 신입생으로 입학시킨다. 전북 전주대의 경우 베트남 출신 학생 450명이 재학 중이다.(조선일보, 2018년 11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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