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한반도는 광활한 유라시아대륙에 속해 있고 그 유라시아대륙은 다시 거대한 아프리카로 이어져 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이 거대한 땅덩어리를 아울러 '아프로 유라시아(Afro-Eurasia)'라 부르기도 합니다.

아프로 유라시아는 너무 커서 인공위성을 타고 우주 공간으로 올라가 보더라도 한 눈에 다 담을 수 없습니다. 동쪽 끝의 한반도를 시야에 넣으면 서쪽 끝이 잘 보이지 않을 것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 아프로-유라시아 지구상의 아프로-유라시아
ⓒ 위키
   
▲ 아프로-유라시아 아프로-유라시아
ⓒ fineartamerica.com
  
지구상의 모든 땅을 합친 것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프로 유라시아 대륙의 동단에 우리 한반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불가사의한 일은 아득한 옛날부터 인간들이 아프로 유라시아 대륙을 한 장의 평면지도에 그리려는 시도를 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유럽에서 15세기 중반에 나온 가장 혁신적인 아프로 유라시아 지도 두 장을 보겠습니다.
 
▲ Catalan-Estense World Map 1450-1460 경 제작
ⓒ myoldmaps.com
 
 
▲ Fra Mauro map 1450년경 제작
ⓒ 위키
    
지도의 정확성은 차치하고 근대적인 관측기구가 없던 그 옛날에 우주 공간에서 바라보고 있는 듯한 지도들이 그려졌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프로 유라시아 동단의 한반도와 서단의 이베리아 반도, 그리고 아프리카의 희망봉 일대까지를 아우르는 지도를 최초로 그린 것은 언제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혹시라도 우리가 그 주인공은 아닐까요? 1402년 한양에서 그려진 강리도(혼일역대강리국도지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 강리도 강리도 달항아리 이미지
ⓒ 김선흥
 
지난 번에 우리는 강리도가 서양에서 어떻게 인식·평가되고 있는지를 엿보았습니다. 그 가치와 특징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강리도를 다른 문화권에서 나온 지도들과 비교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름답고 논쟁적인 지도"

이와 관련하여 서양의 여행 전문 사이트 컬쳐 트립(Culture Trip.com)가 흥미로운 글을 싣고 있군요. 먼저 회사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봅니다. 2011년 영국 런던에서 창업된 신흥 기업으로서 무려 1억 달러의 투자를 끌어들임으로써 구글, 페북을 추격하고 있다고 합니다(cnbc.com/2018/09/25/culture 참고). 

컬쳐 트립 사이트에는 월 평균 2천만 명가량이 방문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이트 편집인 Luke Abraham은 "이토록 아름답고 논쟁적인 10개의 지도가 세계를 영원히 바꾸었다(These Beautiful and Controversial Maps Changed the World Forever)"라는 제목의 글(2017년 8월)을 실었습니다. 10개의 지도 중에서 처음의 네 개를 가져와 보겠습니다.
  
▲ 프톨레미 지도 Ulm판 프톨레미 세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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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이드리시 지도 중세 이슬람 세계상, 남쪽이 위를 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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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어포드 지도 중세 기독교 세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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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리도 강리도 류코쿠본
ⓒ 위키
 
상이한 문명권을 대표하는 기념비적 지도들입니다. 하나씩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지도는 1482년 독일 울름(Ulm)에서 출판된 것으로, 울름판 프톨레미 세계지도라고 불립니다. 2세기 그리스 천문지리학자 프톨레미(Ptolemy)가 저술한 <지오그라피>의 이론과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지리지식을 보완해 제작한 것입니다.

<지오그라피>는 지도 제작 이론(투영법)을 제시함과 동시에 무려 약 8000개에 이르는 지명의 위치를 적어 놓았습니다. 그의 투영법과 경위도 개념, 수학적 지도 제작 이론 등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지오그라피>는 로마제국 멸망 후 이슬람권으로 전해졌습니다. 서구에서는 근 1300년 동안 잊혀져 있었습니다.

<지오그라피>가 유럽에서 부활한 것은 15세기의 개막과 함께 이태리 피렌체에서였습니다. <지오그라피>의 재발견은 서양의 '지리상의 대발견' 시대를 여는 추동력이 됐습니다.

그후 서양에서 <지오그라피>를 바탕으로 만든 지도는 대체로 '프톨레미지도'라는 이름으로 발간됐습니다. 프톨레미가 생전에 직접 세계지도를 그렸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합니다.

프톨레미 지도에서 아프리카를 주목해 보겠습니다. 아프리카의 남부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 않고 미지의 땅 Terra Incognita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 프톨레미 지도 미지의 땅
ⓒ 위키
이 미지의 땅은 오른쪽으로 한없이 뻗어나가 아시아 대륙에 닿아 있습니다. 따라서 인도양은 닫혀 있습니다. 배를 타고 희망봉을 돌 수 없습니다. 서양에서 프톨레미의 세계상이 처음으로 깨진 것은 1488년 포르투갈 항해가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한 순간이었습니다. 아래 지도가 그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마르텔루스Martellus 지도(1490년경)입니다.
 
▲ 마르텔루스 지도 1490년경 제작
ⓒ 영국국립도서관
 
우리의 세계상

이처럼 15세기 말에 이르러 비로소 서양인들에게 아프리카 남쪽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인도양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프리카의 형상은 왜곡이 심합니다. 이 지도와 우리의 강리도(1402)이미지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두번째 지도로 시선을 옮깁니다. 중세 이슬람 문명권을 대표하는 지도입니다. 1154년 모로코 출신의 이슬람 학자 알 이드리시(al- Idrisi)가 지중해의 시칠리섬에서 그린 것입니다. 중세 이슬람 지도의 전통에 따라 남쪽이 위에 가 있습니다. 보다시피 위쪽의 아프리카가 지구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중심에 아라비아 반도가 놓여 있습니다. 인도양은 열려 있고 아프리카는 환해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다음으로 중세 서양의 세계상을 보겠습니다. 세번째의 Hereford 지도입니다. 영국 Hereford 성당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동쪽이 위로 가 있습니다. 중세 이슬람권에서는 남쪽을 위에, 기독교권에서는 동쪽을 위에 두었습니다. 동쪽을 위에 두면 맨 위쪽에 에덴 동산을 위치시킬 수 있습니다. 한 중심에는 예루살렘이 놓여 있습니다. 중세 기독교권의 세계상입니다.
 
이제 시선을 마지막 지도로 옮깁니다. 눈이 문득 밝아질 것입니다. 우리의 강리도입니다. 북쪽이 위에 가 있고(이 점이 우수하다는 뜻은 아님) 인도양은 열려 있으며, 아프리카는 작지만 처음으로 온전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중심에 놓여 있는 중국이 압도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 오른쪽의 한반도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프톨레미 지도와 대조해 보면, 프톨레미 지도는 전체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좌우 폭이 과장되어 있고 지중해도 좌우의 폭이 실제보다 경도 20도 정도가 넓게 그려져 있습니다. 아프리카 땅도 몹시 왜곡되고 과장돼 있습니다.

반면에 강리도는 한반도와 중국이 과장되어 있습니다. 한편 알 이드리시 지도는 아프리카가 과장되어 있고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가 소재하는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이처럼 문명권에 따라 지도의 중심과 방위가 다르고 특별히 크게 그린 공간도 서로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강리도는 당시의 시점에서 최대의 지리공간, 즉 아프로 유라시아의 세계를 자주적으로 재구성한 한국인의 세계상이었습니다. 우리 땅을 특별히 크게 그렸지만 자기 중심성에 매몰되지 않았고, 초광역적인 공간을 그리면서도 주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비로소 조선 초 우리 선조들이 세계성과 주체성을 융합한, 영감으로 가득 찬 세계도를 남겼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15세기 우리 역사의 지평에서 탄생한 강리도와 한글은 실로 쌍벽을 이루는 세계사적 보물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컬쳐 트립 사이트는 강리도를 '놀랍고도 장엄한(Gorgeous and sublime)'지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까닭 없는 찬양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아무리 이렇게 강조해도 사실 강리도의 진가를 실감하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매우 축소된 이미지만을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크기는 158cmx163cm로 상당히 큰 지도입니다. 실물 이미지를 들여다보기 전에는 진면목을 알기 힘듭니다. 지중해 일대를 확대해 끌어와 보겠습니다. 진면목의 일단을 엿볼 수 있을 겁니다.
 
강리도의 지중해
  
▲ 강리도 류코쿠본의 재현본
ⓒ 김선흥
  
강리도의 모사본(1910, 일본 교토대 제작)에서 따왔습니다. 지중해는 바다색깔이 누락되어 있지만 어렵지 않게 식별할 수 있습니다. 왼쪽으로 이베리아 반도, 중앙에는 이태리반도와 그리스가 보입니다. 오른쪽 방향에 보이는 파고다(붉은 화살표)는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하단에 홍해가 그려져 있습니다.
지중해 전후 좌우의 지역에 지리정보가 빼곡히 들어 있습니다. 상상을 초월합니다. 지중해 가운데 약간 왼쪽을 보면 녹색으로 칠해져 있는 큰 섬이 눈에 뜨입니다. 그 위는 이태리 반도입니다. 이 녹색 섬은 위치나 크기로 보아 시칠리 섬이 거의 분명해 보입니다. 참고로 12세기 알 이드리시 지도와 대조해 보겠습니다. 시칠리 섬(녹색 화살표)이 눈이 뜨이고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붉은 화살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알 이드리시 지도 12세기 초
ⓒ 위키
   
알 이드리시가 이 지도를 만든 곳이 바로 시칠리섬의 팔레르모(Palermo)였습니다. 그 때문인지 시칠리아섬이 크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습니다.
 
▲ 알 이드리시 지도 시칠리 섬
ⓒ 옥스포드 Bodleian 도서관
 
강리도(류코쿠본)에서 시칠리로 추정되는 섬에 어떤 지명도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강리도의 다른 판본들도 마찬가지일까요? 거기엔 혹시 시칠리섬과 유서 깊은 팔레르모의 이름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다음 회에서 이어 설명하겠습니다.(오마이뉴스, 2018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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