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2016년 1월부터 3년간 3만1543명 한 해 100만원씩 받아…
청년들 “누군가에게 존중받고 보살핌받는 느낌”

 

세 돌 맞은 청년배당 세금 더 낼 마음이 생겼다.jpg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스물다섯 살 지선(맨 왼쪽)씨가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는 청년배당금으로 속옷과 책을 샀다.  

        

취업 준비를 하는 스물다섯 지선씨는 ‘청년배당’ 대상자다. 2018년 경기도 성남시로부터 석 달마다 25만원씩 세 차례 받았다. 올해엔 마지막 25만원이 남아 있다. 그동안 나름의 배당금 사용법도 생겼다. 엄마에게 10만원, 언니에게 5만원을 주고 자신은 10만원을 쓴다. 지출은 “그동안 미루고 미뤄뒀던 물건” 순이다. 한번은 3만~4만원짜리 속옷을 샀다. “보이는 것부터 사게 되니까 늘 (소비)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속옷이었다.

그다음엔 “한 번도 안 해봤던 일”에 돈을 썼다. 서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눈여겨봤던 2만원 안팎의 컬러링북(색칠공부 책)을 처음 샀다. 부모님과 함께 살며 계속 일해온 덕분에 여유 있게 생활하는 지선씨에게도 청년배당은 “정말 사고 싶었던 것을 사고,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을 하게 해주는” 기회가 됐다.

성남시에는 3만 명 넘는 ‘지선씨’가 있다. 2016년 1월 청년배당 제도 시행 이후 3년간 만 24살 청년 3만1543명이 1년간 100만원(분기마다 25만원씩)을 현금이 아닌 지역화폐 ‘성남사랑상품권’으로 받았다. 돈으로 따지면 총 311억8900만원에 이른다. 지금은 청년배당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청년정책이 됐지만, 도입할 때만 해도 매우 낯선 제도였다. 독특한 제도의 설계 때문이다.

청년배당은 성남시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살 청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방자치단체가 돈을 주는 정책이다. 전국 최초다. 비슷한 시기 서울시도 ‘청년수당’(만 19~29살 중위소득 60% 이하 미취업 청년에게 최대 6개월 동안 월 50만원 지원)을 신설했지만 청년의 취업을 촉진하는 구직수당에 가까웠다. 다만 성남시는 예산 문제로 ‘만 19~24살 청년으로 대상자를 확대’하려던 당초 계획은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2016년 기준으로 6만7천여 명이던 만 19~24살(3년 이상 거주) 청년의 절반이 지난 3년간 혜택을 받았다.

대학 전공서적 등 구입

선별·현물 복지를 주장하는 보수 진영의 거부감은 심했다. 청년배당을 ‘최고의 포퓰리즘’ ‘막무가내 무상복지’ ‘달콤한 독약’이라며 청년들이 ‘상품권깡’이나 할 것이라고 깎아내렸다. 법에 따라 새로운 사회보장제도를 만든 성남시는 보건복지부에 협의를 요청했지만. 당시 박근혜 정부는 성남시의 무상 공공 산후조리원, 무상 교복 정책과 함께 청년배당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결정하고 지자체에 내려보내는 지방교부금도 삭감하겠다고 협박했다. 중앙정부와 경기도, 성남시는 소송과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 청구로 얽히고설켰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탄생 이후 소송과 권한쟁의심판은 모두 취하됐지만, 지금까지도 청년배당은 정부의 동의 없이 시행되고 있다.

정부가 인정하느냐 마느냐와는 상관없이, 청년배당은 성남시 청년들에게는 이미 상수다. 청년들은 배당금 지급 시기에 맞춰 지출 계획을 세우고 소비를 한다. 지선씨와 동갑인 정윤(25)씨는 2018년 7월 처음 대상자가 되기 전, 인터넷에서 또래들이 배당금을 어떻게 쓰는지 미리 찾아봤다. 대학 전공서적이나 취업 대비 문제집을 많이 산다고들 했다. 그들처럼 정윤씨도 25만원어치 상품권을 처음 받은 뒤 15만원을 책 구입에 썼다. 운전면허 문제집과 영어 교재는 물론, 철학 책도 몇 권 골랐다. “철학 도서 수집을 좋아하는데 거의 양장본이라 2만5천~3만원이 넘어가서 못 사던” 책들이었다. 나머지 10만원은 “길거리에서 유심히 살펴본 성남사랑상품권 가맹점들 중 눈에 띄는 안경원”에서 안경을 샀다. 다만 가맹점에 대형마트나 프랜차이즈, 편의점 등이 빠져 있어 아직까지 상품권을 다 쓰지 못했다.

특히 청년배당은 돈에 쪼들리는 청년의 숨통을 틔워주고 있었다. 대학 재학 또는 구직 활동 중에 등록금·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거나, 취업했더라도 비정규직 일자리 같은 저임금·불안정 노동을 하는 청년들에게 ‘월 8만3천원’은 푼돈이 아니다. 2018년 봄 사회복지사를 꿈꾸며 늦깎이 대학생이 된 혜진(26)씨는 1년 전만 해도 청년 진로학교인 ‘일하는 학교’와 정부의 일자리 지원 프로그램인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해 진로 탐색과 구직 활동을 하면서 생활에 허덕였다.

주말 커피숍이나 평일 야간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로 받은 돈은 100만원 남짓. 부모님과 함께 살지만 밖에서 하루 세끼를 사먹고 교통비를 충당하기에도 버거웠다. 힘든 시기의 버팀목이 “의식주 해결이 가능한 청년배당”이었다. “상품권으로 미용실에서 머리도 하고 옷도 사입고, 라면 대신 과일도 사먹었어요.” 도입 당시 보수 진영의 주장대로, 모든 청년에게 수당을 주는 대신 빈곤 청년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주거나 청년 일자리 정책에 집중적으로 예산을 편성했다면, 혜진씨는 누릴 수 없었던 혜택이다.

 

나라에서 용돈 받는 느낌

애초에 청년배당의 목표는 단순히 ‘청년의 생계 지원’이 아니었다. ‘청년배당 지급 조례안’에도 사업 목적에 대해선 성남시 청년의 ‘복지 향상’과 ‘취업역량 강화’라고 돼 있다. 청년이라면 일을 하든지 구직 활동을 하든지, 돈을 취업 준비에 쓰든지 취미 활동에 쓰든지에 상관없이 지자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청년배당에 ‘부분 기본소득’ 또는 ‘청년 기본소득’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래 기본소득은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무조건으로’ 보장해주는 일정한 소득을 뜻한다. ‘성남시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살 청년’이라는 조건을 달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긴 하지만, ‘ 재산·소득·취업 여부’에 상관없이 일정한 금액인 ‘1년에 100만원’을 주는 만큼 기본소득의 성격을 띤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청년배당이 기본소득 ‘실험’이라 했다.

2016년 봄 혜지(26)씨는 임신 중 처음 청년배당의 혜택을 맛봤다. 남편이 대상자가 되면서다. 아이를 가진 뒤 일을 그만두고 200만원 안팎의 남편 수입으로 빡빡하게 가계를 꾸리던 혜지씨는 우선 집 앞 전통시장으로 갔다. 상품권으로 고기, 나물, 과일 등 제철 식재료를 사서 삼시 세끼 건강한 밥상을 차렸다. ‘12만5천원’(2016년 초기에는 분기당 지급액 25만원의 절반만 지급하다가 연말에 전액 지급)은 아끼면 둘이 보름에서 한 달은 버틸 수 있는 식비였다. 2018년 자신의 이름으로 상품권을 받았을 때도 세 식구 먹거리를 주로 샀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할머니와 살면서 10대 때부터 스스로 돈을 벌어 쓰던 혜지씨는 “처음 나라에서 용돈을 받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복지정책의 효용성 체감

경제적 지원만이 아니었다. 일부는 심리적 위로도 받았다고 했다. 저소득층·노인·아동 등 특정 계층에 견줘 사회보장제도에서 소외됐던 청년들이 처음 겪은 복지였기 때문이다. 유통업체 직장인 기혁(26·가명)씨는 돈도 돈이지만 “누군가에게서 존중받는 느낌”이 더 컸다. “어릴 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거든요. 그때랑 느낌이 달라요.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누군가 물을 떠먹여주는 느낌이랄까.”

정윤씨 마음도 기혁씨와 비슷하다. “정말 힘든데 혼자서 현실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요. 그런데 (성남시는) 지금 우리가 어떤지 상관없이 미래 가능성만 보고 일단은 투자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우리를 보살펴주는 느낌이요.”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생각을 만든다. 복지정책의 효용성을 처음 느낀 이들은 다른 청년들을 위해 청년배당이 적어도 현 상태로 유지되거나, 지역·나이·지원액이 확대돼야 한다고 느꼈다. 이를 위해 일부는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면 세금을 더 낼 의사도 있다고 했다. 보수 진영의 논리대로 공짜로 돈을 받고서 일할 의욕이 저하됐다거나 사회에 의존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다는 이는 없었다.

일부는 정책을 만들고 결정하는 정치에 대한 관점도 바뀌었다고 했다. 보육교사를 준비 중인 동욱(26·가명)씨는 2017년 대통령선거에는 투표를 안 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는 투표장으로 나갔다. “좋은 정책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눈에 보이는 혜택을 경험하니 ‘누가 대통령이 되든, 누가 지사가 되든 우리에겐 똑같다’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지난 대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게 표를 줬던 혜진씨는 최근 지방선거에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에게 투표했다. “정당이 아닌 정책을 보기 때문”이란다. 물론 “청년배당이 좋지만 (그로 인해) 지지 정당이 바뀌지 않았다”는 이도 많다.

지역경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8년 발행된 성남사랑상품권 459억원 중 103억원(22.3%)이 청년배당에 쓰였다. 상품권 회수율도 96~97%에 이른다. 성남시 중원구 수진역 지하상가에서 여성옷 가게를 하는 김수련씨는 “배당금 지급 시기가 되면 또래가 몰려와서 2만~3만원짜리 옷을 사간다”며 “아무래도 (청년배당 시행으로) 젊은층 상품권 사용이 늘어서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업종에 따라 체감하지 못하는 자영업자도 있다. 남성복을 파는 고석진(가명)씨는 “처음 2016년 1·2분기에만 반짝하고는 효과가 없다”고 했다.

올해 경기도 청년배당으로 확대

2019년에는 또 다른 실험이 시작된다. 성남시 청년배당이 경기도 청년배당으로 흡수된다. 경기도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살 청년 17만 명(총 1227억원)이 대상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018년 6월 당선 뒤 성남표 3대 무상복지(청년배당, 무상교복, 산후조리비 지원)를 경기도에 확대 적용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왔다. 이와 함께 만 18살 청년이 국민연금에 가입하도록 첫 달치 보험료(9만원)를 도가 대신 내주는 ‘청년 국민연금’(15만 명·147억원)도 처음 시행된다.

한발 더 나아가 이 지사는 대상자 연령을 확대해 청년배당을 청년기본소득제로 변경하는 방안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기본소득 관점에서 청년배당이 지역화폐로 지급돼 ‘자유성’에 한계가 있고, (대상) 인구 집단이 작고 금액이 매우 낮다”면서도 “(일할 능력이 있는) 청년이 자신의 권리로, 분배의 정의에 따라 정당한 자원을 배분받는 경험이 값지다”고 말했다. (한겨레, 2019년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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