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 시장>낸드플래시
"금보다 비싼 토마토 종자도" 

총성없는 종자전쟁 "일본종자 90%던 우리 딸기, 주권 회복했다"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불리는 '종자'를 둘러싼 경쟁이 불붙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전체의 50%를 차지한 가운데 세계 각국은 종자 주권 확보에 여념이 없다.

각국이 종자 산업에 매진하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우수한 종자를 개발해 수출하면 다른 나라로부터 로열티 수입을 얻는다. 네덜란드 원예과학 개발센터에 따르면 일부 토마토 종자의 1㎏당 가격은 9만 유로(1억1400만원)로 금(㎏당 3만5000유로)보다 비싸다. 자국 종자가 많으면 외국에 로열티를 줄 필요가 없어 일거양득이다. 종자 산업은 식품·의약품·화장품 등 응용산업에도 보탬이 된다.
         
                                반도체보다 짭짤한 종자산업..세계가 빠진 블루오션.jpg


세계 종자 연관 산업은 780억 달러(86조원)로 추정된다. 이는 올해 낸드플래시 반도체 시장(645억3500만 달러, IHS 마킷)을 뛰어넘는 수치다. 이 중에서 옥수수·콩 등 농산물 종자 시장은 2016년 372억 달러에서 2017년 394억 달러(필립스맥두걸 기준)로 커졌다.

종자 산업은 연 5%씩 성장하는 블루오션이다. 이에 각국은 종자 보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노르웨이는 전 세계 종자 96만8000점(2018년)을 보관하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 '글로벌 시드볼트'를 운영하고 있다.

G2 국가 미·중은 종자 시장서도 양보 없이 겨루고 있다. 아그로페이지스에 따르면 1~2위는 미국, 3위는 중국기업이다. 후발주자인 중국은 해외 기업을 사들여 종자 강국을 꿈꾸고 있다. 켐차이나는 430억 달러에 스위스 씨앗·농약 업체 신젠타를 인수했다. 9위인 룽핑은 다우 듀폰이 거느린 브라질 내 옥수수 종자 사업체를 11억 달러에 사들였다. 지난해 룽핑은 "5년 내로 브라질 옥수수 종자 시장 3분의 1을 점하겠다"고 했다.
         
반면 한국 종자 산업 규모는 9674억원(종자+육묘) 수준이다. 우리는 1998년 외환위기 때 흥농종묘·중앙종묘·서울종묘 등 3대 종자 기업이 다국적 회사에 매각돼 기반이 흔들렸다. 제조업 위주의 경제 구조 때문에 농업 비중과 경지면적이 줄며 성장이 더뎠다.

상위 20대 종자 기업에 한국은 없다. 덩치도 작다. 매출액 5억원 미만 종자 업체가 전체의 87.9%다. 영세 기업들이 경쟁 심화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운천 바른미래당 의원은 "국내 자생 중인 우리 특산식물이 360종이 넘지만, 부가가치가 높고 세계 시장 규모가 큰 파프리카·토마토의 육종 기반은 선진국보다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배경 속에 한국은 종자 수출로 인한 로열티 수입보다 종자 수입에 따른 로열티 지급이 많다. 국내 종자 무역은 수입이 수출보다 약 4배 많은 적자 구조다. 청양고추는 외환위기 때 우리 청양고추 종자 로열티가 독일 바이엘에 넘어갔다. 과일 중 국산 종자 자급률이 제일 낮은 품목은 포도로 2.5%에 불과하다. 현재 제주에서 생산 중인 감귤의 90%가 일본 품종이며 국내 재배 중인 파프리카의 대부분도 외국 종자다. 사과와 배의 국산 종자 자급률은 18%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품종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성공 사례는 경북도농업기술원이 개발한 우리 딸기 품종 '싼타'다. 당도가 높고 잘 무르지 않아 운반과 보관이 쉽다. 현재 중국에 수출돼 로열티를 받는 효자다. 2000년 초만 해도 국내 딸기 품종의 90%가 일본산이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정부가 2006년 농진청 주관으로 '딸기연구사업단'을 꾸려 미미했던 국산 딸기 품종 보급률을 94.5%까지 올려놨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 1월말 경남 진주의 딸기 농단을 방문해 "10~20년 전에는 딸기 종자 주권이 없었는데 이제는 수출까지 하고 있다"며 "딸기 주권을 회복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훼도 갈 길이 멀다. 난(蘭)은 18.2%(2018년)의 보급률에 그친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김원희 과장은 "해외 품종에 의존하는 화훼 농가가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기준 국산 장미 자급률은 30%다. 장미 1주당 적게는 1달러, 많게는 3달러씩 로열티로 지급한다. 우리가 해외에 내는 화훼(관상식물) 관련 로열티만 1년에 100억원 이상이다.

박기영 농진청 농업연구사는 "한국에선 자칫 도태될 뻔한 장미가 해외에서 빛을 발한 사례가 있다"고 소개했다. 주인공은 '딥퍼플'(국내명 '필립')이다. 진분홍과 흰색이 섞인 이 꽃은 에콰도르·콜롬비아·케냐 등에 팔렸다. 그는 "국내에선 꽃이 작다며 도태될 뻔했던 것이 케냐 등 햇빛이 강한 고지대에 적합하다 평가받아 수출되기에 이르렀다"면서 "네덜란드 종자회사인 두먼오렌지가 주요 판매 품종으로 한국의 딥퍼플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딥퍼플은 손을 다치게 하는 가시가 없어 농가·플로리스트가 선호한다. 2016년에는 대한민국 우수품종 상에서 대통령상을 받는 등 호평받았다.

딥퍼플을 키워낸 경기도농업기술원은 2009년~2018년 해외에 장미 539만주를 판매해 로열티로 11억2000만원을 거뒀다. 올해도 장미로만 1억원 이상 로열티 수입을 거둘 전망이다. 박 연구사는 "프랑스 육종회사인 NIRP에서 지난해 우리 장미 200여 계통(품종 전 단계)을 테스트하길 원해 선발해갔다"면서 "수출 사례를 많이 만들겠다"고 말했다.

로열티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는 씨 없는 청포도 '샤인머스캣'이다. 원래 샤인머스캣은 일본에서 1988년 개발했다. 그런데 일본이 샤인머스캣의 인기를 예상하지 못하고 2006년까지 품종 등록을 망설이는 동안 한국이 이를 국내 도입해 한국형으로 개량해 심어버렸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이런 배경으로 우리는 한 송이에 1만원이 넘는 샤인머스캣을 로열티 없이 먹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샤인머스캣은 2㎏에 4만5000원 이상(가락시장)에 팔리고 있다. 중국·베트남 등 7개국에 수출도 되고 있다. 김동근 산떼루아 영농조합법인(농가 25곳) 대표는 "2015년 8.1t으로 시작한 수출은 지난해 240t(37억원)을 달성했다"고 소개했다.
         
6차산업으로 불리는 농업에서 핵심도 결국 종자에 달렸다고 분석한다. 이개호 농식품부 장관은 "미래 성장동력인 종자 기업 육성과 수출 활성화를 위해 산·학·관·연의 역량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정부는 '황금 씨앗(골든 시드) 프로젝트'를 통해 고추·배추·양파·버섯·감귤·감자에서 돼지·닭까지 20여개 종자를 연구 중이다. 이 프로젝트로 양파 자급률이 20%에서 50%까지 오를 전망이다.

수출도 중요 과제다. 정부는 2022년까지 종자 수출 2억 달러 달성을 통해 세계 13위권 수출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제2차 종자 산업 육성 5개년 종합계획(2018∼2022년)'을 추진 중이다. 김경규 농촌진흥청장은 "지난해 김제에서 개최된 국제 종자박람회에서 상추 종자 포함 300만주의 종묘, 18억 규모의 수출계약이 성사됐다"고 밝혔다.

짧게는 7~8년, 20년까지 걸리는 종자 산업의 특성상, 장기적 안목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충북대학교 이철희 교수는 "단기간에 종자 ‘보전-활용’ 산업을 진행할 게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2019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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