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빙선이 북극곰 생활 터전을 망친다.jpg



쇄빙선(ice breaker)'이 북극곰의 삶의 터전을 망친다는 주장은 사실일까요? 쇄빙선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 얼음을 깨는 배입니다. 쇄빙선이 주로 활하는 지역은 북극해나 남극해 같은 극지방입니다.

극지방은 엄청난 추위로 인해 바다가 얼어 붙습니다. 극지방의 바다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얼음덩어리들이 떠 다니는데 일반 선박은 이런 얼음들을 부수며 앞으로 나가갈 수 없습니다. 작은 얼음조각과 충돌해도 선체에 구멍이 뚫리기 일쑤여서 안전항해를 위해서는 수십~수백㎞를 돌아서 가야하는 일도 많습니다.

물류 수송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북극해 항로의 경우 북극해 연안 도시들의 물자 수송에 사용되고, 동아시아와 서유럽을 연결하는 최단 항로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항로에는 항상 얼음이 변수입니다. 바다가 얼어붙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일본 요코하마항에서 북서유럽의 네델란드 로테르담항까지 이어지는 북극해 항로는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항로보다 거리가 24%나 단축되지만 얼음으로 덮힌 바다는 위험합니다. 그래서 얼음을 깨는 쇄빙선이 필수입니다. 쇄빙선은 단독으로 할동하기도 하지만 주로 얼어붙은 바다에 수로를 만들어 다른 선박의 항행을 유도하는 역할도 합니다.

가끔 얼음 속에 갇힌 화물선이나 어선, 연구선도 구출합니다. 국내 유일의 쇄빙선인 아라온호는 2011년 빙하에 부딪혀 좌초된 러시아의 어선 스파르타호를 구조했고, 2012년 원양어선 정우2호를, 2015년 원양어선 썬스타호를 예인해 구조했고, 지난 1월에는 남극의 섬에 고립된 중국 남극조사단의 구조 요청에 출동했으나 접안이 힘들어 헬기 이용해 전원 구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극비장의 바다를 운행하는 선박들은 자체 쇄빙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을 위해 쇄빙 LNG선을 운행하기도 하고, 다른 국가들은 쇄빙 화물선과 쇄빙 관광선도 운영합니다. 번번이 쇄빙선의 유도를 받아 움직이는 것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아예 쇄빙 기능을 갖춘 선박을 투입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쇄빙선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정확하게는 북극곰의 삶의 터전을 파괴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2013년 7월7일(현지시간) 영국의 일간지 '더선(The sun)'에 충격적인 사진이 한 장 실립니다. 어린 북극곰 한 마리가 거대한 얼음 위에서 쇄빙선을 밀어내는 모습입니다.




북극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제도에서 한 관광 쇄빙선이 유빙을 헤치고 나아가는 앞에 아직 어린 북극곰 한 마리가 길을 막아서는 모습을 크리스 웨스트우드라는 선원이 촬영한 사진이 전 세계적 파장을 불러 일으킵니다. 주로 스캔들이나 선정적인 내용을 싣는 타블로이드판 대중지의 '내 얼음에서 손 떼(Oi...get off my ice)'라는 파격적인 제목이 대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쇄빙선은 두꺼운 얼음과 충돌할 때의 충격이 크기 때문에 선체 바깥에 선체를 한 겹 더 만든 2중선체 구조로 돼 있습니다. 특히 연료탱크와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는 시설의 경우 특히 견고하게 감쌉니다. 그래서 쇄빙선 자체에서 발생하는 오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얼음을 부수고 나가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얼기 때문에 쇄빙선이 북극곰의 터전을 망친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다만, 선박 운행으로 인한 공해는 무시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가까운 항로를 이용하지 않고 멀리 돌아가야 한다면 더 많은 연료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게 됩니다. 쇄빙선이 탄소 배출을 어느 정도는 줄여주는 역할도 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쇄빙선은 선수를 얼음 위로 올려 놓고 배의 중량으로 눌러서 얼음을 깨트린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런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얼음이 아주 두꺼울 경우에 해당하는데 그럴 때는 사람이 걷는 속도 정도로 느리게 전진합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다지 두껍거나 강하지 않은 1m 두께 내외의 얼음을 깨면서 제법 빠른 속도로 전진한다고 합니다.

북극곰이 쇄빙선을 막고 있는 사진의 경우 관광 쇄빙선이 운행하던 노르웨이의 스발바르제도에는 북극곰이 다수 서식하는 서식지로 유명한데 평소에도 쇄빙선에서 북극곰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사진을 찍은 선원은 느리게 움직이는 쇄빙선에 호기심을 느껴 접근한 어린 북극곰의 순간을 찍었다고 합니다.


                                    쇄빙선의 전진에 얼음이 깨집니다. 쇄빙선은 얼어붙은 항로를 개척하는 역할을 합니다.          


최근에는 원자력 쇄빙선이 운행되고 있습니다. 원자력 쇄빙선의 가장 큰 장점은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아 탄소 배출이 없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방사능 유출이 가장 큰 걱정거리입니다. 공해는 없지만 혹시나 사고가 날 경우 더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환경단체의 반대가 극심합니다. 현재까지 원자력 쇄빙선을 운영하는 국가는 러시아가 유일합니다. 지금 운항 중인 원자력 쇄빙선 8척, 원자력 쇄빙 화물선 1척은 모두 러시아에서 건조된 것입니다.

다른 국가들이 원자력 쇄빙선을 건조할 수 있는 기술이 없기 때문에 원자력 쇄빙선을 만들지 않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러시아는 그동안 원자력 쇄빙선과 핵잠수함 운영과정에서 일으킨 사고가 적지 않습니다. 자칫 북극해가 방사능에 오염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북극곰을 터전에서 내쫓는 것은 쇄빙선이라기보다 국가간의 경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결국 인간의 진출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북극해를 선점한 러시아와 경쟁하는 미국과 미국의 경쟁을 뿌리치기 위해 중국과 협력하려는 러시아 등 강대국의 파워게임이 북극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중국이 '북극 실크로드'를 추진하자 미국은 "북극해가 남중국해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대놓고 견제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아이슬란드·노르웨이와도 연구기지 확보와 쇄빙선 개발을 위해 협력하는 등 북극 진출을 위해 미국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쇄빙 관광선 정도로 그친다면 북극곰과 인간은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러시아는 원자력 쇄빙선을 점점 더 늘려가고 있고, 중국은 그린란드에 비행장을 건설해 북극을 누비려다 미국과 부딪혀 좌절되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쇄빙선, 즉 도구가 문제가 아닌 도구를 만든 인간이 문제입니다.(아시아경제, 2019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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