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백자 불상 얼마에 팔렸을까.jpg




조선 시대에 백자로 빚은 소형 불상이 국내 경매에 나왔다는 소식을 이틀 전 방송뉴스로 전해드렸습니다. 경매 출품작은 기본적으로 판매를 위한 '상품'이기 때문에 뉴스로 전해드리기에 부담이 있었지만, 백자로 된 불상은 기존에 알려진 적이 거의 없는 아주 희귀한 유물이라는 점에서 소개해드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게다가 불상 자체가 예쁘다는 사실도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이기는 해도 사진에서 보이듯 전체적인 비례와 조화도 자연스러운 데다 이목구비와 옷의 주름 표현이 매우 세밀합니다.



묘사가 세밀하다는 것은 불상의 크기를 볼 때 더 의미가 있습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다리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측정한 높이가 6.6cm입니다. 불상은 나무로 만들어 옻칠을 한 좌대(받침대)에 앉아 있는데 그 높이를 더해도 작은 종이컵과 비슷한 크기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백자는 흙으로 형태를 빚어 유약을 바른 뒤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내야 합니다. 부처의 미소를 담은 이목구비와 머리에 쓴 보관(장신구)은 밀리미터 단위로 표현한 셈인데, 여러 단계의 제작 과정을 거치며 잡티 하나 없이 이렇게 수준 높은 결과물이 나왔다는 것은 요즘 유행어처럼 '저 세상 솜씨'가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왼쪽부터 ‘청자 퇴화점문 나한좌상(국보 제173호)’, ‘백자 보살 좌상’, ‘백자 철화 인물 좌상’


처음 보는 ‘백자 불상’…비슷한 작품은 없을까

백자 불상이 처음 소개되는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목록과 문화재청의 '국가문화유산 포털'을 통해 도자기로 된 인물상을 찾아보았습니다. 백자 불상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작품은 위 사진에 보이는 3점 정도가 있습니다. 맨 왼쪽 청자로 된 인물상은 국보 제173호로 지정된 고려 시대의 것입니다. 노인의 이목구비와 승복을 입은 것으로 표현돼 있어서 나한상이라는 명칭대로 나한(불교 수행자 가운데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을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1950년대 강화도에서 발견됐는데 당시 여섯 조각으로 깨져 있던 것을 이후에 보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진 가운데는 백자 보살상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백자 불상보다 옷과 장식이 더 화려한데, 통상 이렇게 부처보다 화려한 장식을 한 경우를 보살(지혜를 가진 자)이라고 부릅니다. 이번 불상보다 화려하고 정교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볼 수 있지만, 보살상은 높이가 20cm가 넘기 때문에 단순 비교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보살상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조선 시대 것이지만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비지정 문화재'입니다.

사진 오른쪽의 인물상을 비롯해, 도자기로 빚은 인물상은 몇 점이 더 있지만, 이번 백자 불상처럼 부처를 표현하고 파손 없이 온전한 형태가 남은 것은 사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경매 회사 쪽에서도 학계 전문가의 감정을 거친 결과 "백자기 중에 불상은 지금껏 발견된 예가 없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가운데 또 다른 백자 불상의 존재를 아시는 분이 있다면 부디 저희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불상이 담겨 있던 상자와 오세창의 글귀가 있는 상자 덮개



오세창이 남긴 감정기록…누가 글씨를 지워버렸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불상이 담겨 있던 작은 상자 안에 위창 오세창(1864 ~ 1953)의 글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한문으로 된 글귀의 첫머리는 '조선 중엽 분원에서 제작한 정제품(精製品)'이라는 내용입니다. '분원'은 왕실과 궁궐에서 사용할 도자기를 만들던 곳으로 15세기부터 조선 말기까지 지금의 경기도 광주시 일대에서 운영되던 국영 제작소였습니다. 백자 불상을 분원에서 만들었다면, 제작을 의뢰한 사람은 당시의 왕족이거나 그에 못지않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조선 중엽'이라고 한 시기나 불상의 완성도를 볼 때 이러한 추측은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글을 쓴 오세창은 3.1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당대의 서예가이자 문화재 수집가였습니다. 또, 유명한 간송 전형필을 문화재 수집의 길로 이끈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글귀를 쓴 1926년에도 이미 오세창은 문화재 전문가로 명성이 높았기 때문에 당시 불상의 소장자가 일종의 감정을 의뢰하고 그 결과를 글귀로 남긴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오세창의 글귀 가운데 누군가 일부러 글씨를 지운 흔적(빨간 원으로 표시)이 남아 있다.


현대의 문화재 감정서처럼 오세창의 글에는 불상의 내력도 설명돼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 속 글귀에 가운데 비어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빈 부분의 앞 문장은 '가람(사찰)에 보관돼 있던 것인데, OOOOOO으로 보냈다,'라는 내용입니다. 원래는 비어 있는 부분이 당시 불상의 소재지나 소장자를 기록한 것이었을 텐데, 6~7글자 정도가 누군가에 의해 지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지워진 이유를 짐작해볼 만한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이번 경매에 나오기 전 어느 시기엔가 이 불상은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다시 국내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은데, 아마도 오세창이 글을 남긴 1926년 이후의 일제강점기였거나 해방 후의 혼란기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불상이 유통되고 소장되는 과정에 관여한 누군가가 소장기록이 부담스러워 없애버렸을 것입니다. 문화재를 비정상적으로 유통할 때 흔히 쓰는 수법인데, 그 누군가는 오세창의 명성과 글귀의 내용을 알아보고는 차마 완전히 없애버리지 못하고 일부만 지우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1억 2천만 원에 팔린 불상…곧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크기가 아주 작기는 해도, 유일하다고 할 만큼 희귀한 유물인 데다 우여곡절이 담긴 유명인의 감정기록까지 있는 이 불상의 가격은 얼마가 적당할까요? 어제(4일)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열린 경매에서 백자 불상은 1억2천만 원에 낙찰됐습니다. 경매 시작가격은 4,600만 원이었는데 구매 희망자들의 상당한 경합이 진행된 끝에 가격이 두 배 넘게 오른 것입니다. 미술품 경매의 특성상 낙찰자가 누구인지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다만, 불상의 가치를 생각하면 구매자가 개인보다는 박물관 같은 기관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머지않은 시점에 모두에게 공개된 전시장에서 작고 예쁜 백자 불상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kbs, 2019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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