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인들의 삶은 불만족스러울까.jpg



10점 만점에 6.1점.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이번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지난 3월 9일 OECD가 발표한 ‘2020 삶의 질(How’s Life? 2020)’ 보고서는 회원국마다 국민의 생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비교해 보여준다. 한국은 이전까지 꼴찌를 도맡아했던 삶의 만족도 항목에서 겨우 ‘탈꼴찌’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국제비교 자료에 포함되지 않았던 터키의 삶의 만족도 점수가 이번부터 포함된 덕에 최하위를 벗어났을 뿐 한국은 국민이 삶에 만족하는 점수가 두 번째로 낮아 ‘불만 많은’ 나라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OECD가 격년으로 발표하는 ‘삶의 질’ 보고서는 삶의 만족도와 같은 항목을 포함해 소득·자산, 주거, 건강, 안전, 일자리의 질, 사회적 관계, 시민참여 등 12개 주요 항목에 따라 각국이 어떤 점에서 더 개선되고 있고 또 어떤 점에서는 악화되고 있는지를 제시한다. 이번 보고서는 이례적으로 2017년 이후 3년 만에 나왔지만 같은 기구의 ‘더 나은 삶 지수(BLI)’와 함께 국제적으로 시민의 삶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를 잘 파악할 수 있는 주요 자료로 활용된다.

기대수명·사회안전·교육 지표 등 상위

그런데 이 국제비교 자료에서 유독 눈에 띄는 점이 있다. 한국은 다른 여러 객관적 지표에서는 상당 부분 개선되고 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응답자가 주관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평가해 대답하는 항목에서는 점수와 순위가 낮고 개선되는 추세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높은 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최상위권이고, 범죄율도 낮아 사회안전에 관해서도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고등교육을 받은 비율이나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같은 교육 관련 지표도 상위권이다. 가구소득은 아직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삶의 만족도는 최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주관적인 응답으로 점수가 매겨지는 항목에서 한국이 낮은 순위를 차지하는 현상은 삶의 만족도 말고도 여러 분야에서 나타난다. 기대수명 같은 숫자로 본 건강 수준은 높은 데 반해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에서는 한국이 꼴찌다. 객관적·물질적 조건과 상관없이 한국인은 자신이 별로 건강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셈이다. 어려울 때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사회적·공동체적 지원이 부족하다고 응답한 비율도 가장 높다. 얼핏 봐서는 한국인의 문화나 심성 자체가 불만이 많은 성향에 가까워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일 법도 하다.


OECD ‘2020 삶의 질’ 보고서 중 한국인의 삶의 질을 국제적인 수준과 비교해 어느 정도인지를 요약해 나타낸 표. 막대의 높이가 높을수록 긍정적 상태임을, 낮을수록 부정적 상태임을 보여준다. 빗금이 그어진 막대는 불평등한 정도를 나타냈다. OECD



물론 속된 말로 ‘민족성’이라 부르는 문화적·정서적 특성이 반영됐을 가능성은 없지 않다. 한 개인이나 특정 집단을 넘어 사회구성원 불특정 다수의 주관이 큰 규모로 모인 결과에서 일정한 경향이 나타나는 것을 그저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인의 민족성이 불만만 많고 만족할 줄 모르는 성격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정해식 공적연금연구센터장은 “한국의 응답자들이 대체로 설문에서 ‘보통’이라고 응답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만족도 평균도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OECD와 같은 국제기구가 한데 모아 비교하는 자료는 일차적으로 각국의 통계당국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모은 통계·설문을 바탕으로 한다. 국내에서 수행하는 삶의 만족도 등의 조사에서는 ‘매우 그렇다’부터 ‘그렇다’, ‘보통’, ‘아니다’, ‘매우 아니다’ 식으로 응답을 고를 수 있게 하는 5점 척도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에선 다른 문화권보다 확실한 대답을 유보하며 ‘보통’이라고 답하는 비율이 비교적 높다. 낙천적인 문화가 강한 다른 문화권이라면 상당히 만족을 표현할 만한 상황에서도 ‘보통’이라고 응답하는 경향에 일종의 문화적 특성이 반영됐다는 것이 정 센터장의 분석이다.

이와 같은 배경을 감안할 필요는 있지만 그럼에도 조사 과정에서의 사소한 차이 때문에 한국인 삶의 만족도가 낮은 현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정 센터장은 강조했다. 객관적인 지표가 개선되고 있음에도 주관적인 만족도가 쉽게 높아지지 않는 데는 실제 불만족을 낳는 상황과 조건이 여전하다는 점을 뜻하기 때문이다. 정 센터장은 “응답 항목에 ‘보통’을 없애고 응답하게 한다고 해도 만족도 수치가 높아지는 정도는 크게 높지 않다”며 “그런 문화적인 차이나 조사 방식에서의 차이로 만족도가 낮을 뿐이라고 본다면 보다 중요한 문제를 간과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불만을 낳는 요인들이 개선되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에 삶의 만족도를 비롯한 주관적 ‘웰빙(안녕감)’도 여전히 뒤처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오히려 객관적인 수치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이런 지체된 발전상이 국민의 생활환경을 둘러싼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 센터장은 “일부 개선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긴 노동시간과 그것을 낳게 한 저임금 문제는 운동이나 산책처럼 건강과 웰빙을 위한 활동을 어렵게 만드는 등 실제 국민의 삶에서 체감할 수 있는 여유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긴 노동시간과 저임금 등 불만 요인

평범한 시민 입장에서 보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지 않는 모습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모씨(71)는 20대부터 운송업계에서 일해오다 60대 후반에 이르자 더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3년 전부터 갑작스러운 ‘소득 절벽’을 경험했다. 한평생 버스 운전으로 생계를 이어왔지만 다니던 회사에서는 정년 때문에 퇴사해야 했고, 그 뒤로 한동안은 어린이집·학원 등에서 통학용 소형 버스 일자리를 구해 일하다 그마저도 나이가 들어 더 계속하기 어려워졌다. 이씨는 연금과 공공근로를 통해 받는 돈으로 노후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늙어서 은퇴하는 거야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어도 막상 벌이가 절반도 안 되게 줄어들고 보니 한동안은 막막했다”며 “시간은 남아돌아도 바깥에 한 번 외출할 때마다 돈 생각을 안 할 수 없어 집에서 그냥 텔레비전만 보는 게 일과”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노년에 접어들수록 소득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삶의 만족도나 행복감이 낮아지는 모습은 여러 나라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노인 빈곤 문제가 심각한 국내에서는 이러한 만족도 저하가 더욱 두드러지는 점도 국제비교 자료를 통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자리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청년층에서는 사회 진출과 함께 소득·자산 사정이 나아지면서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최근의 상황은 그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대학 졸업 전까지 포함하면 햇수로 4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안영욱씨(28)는 “아직 서른도 안 된 내가 ‘대학생 때가 좋았다’고 한탄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학업과 생계를 병행해야 하니 주머니가 비어 있는 사정은 그대로고, 잠을 자고 밥 먹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살아간다는 탄식이다.

한준 연세대 교수(사회학)가 지적하는 대목도 바로 이러한 지점이다.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경쟁해서 차지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사회에서 살면서 노후까지 비교와 경쟁을 벗어날 수 없는 모습이 한국인의 자화상에 담겨 있다. 평균소득은 높아지고 여러 객관적 수치는 점차 나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개인의 삶은 만족스럽지 못한 채 그대로라는 이야기다. 변화에도 시차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주관적 만족이 물질적·객관적 삶의 수준에 비해 낮은 이유로 국민은 소득·일자리가 불안정하고, 사회가 불공정·불평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서도 한국은 대표적으로 행복의 사회적 기초가 부족한 나라라는 분석이 나오는데, 이렇듯 국제적인 시각에서 볼 때 격차와 불평등이 심각한 모습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 스스로 여유 찾으려는 노력 필요”

정부는 ‘포용적 사회보장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경제적 발전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삶의 만족도를 OECD 평균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도 내놓은 바 있다. 사회복지 지출 규모를 늘리는 등 지난해부터 5년간 332조원을 투자하는 내용이 담긴 ‘제2차 사회보장기본계획’이 그것이다. 객관적 삶의 조건을 향상하려는 정책적 시도가 이어져야 주관적 만족도 역시 올라간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와 함께 그동안의 정책 방향이 예산을 투입하고 물질적 요건을 마련하면 숫자와 통계로 나타나는 성적표 역시 개선될 것으로 봤던 데 비해 그보다는 숫자로 잘 잡아내기 힘든 사회적 관계망 같은 질적·주관적 영역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상민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다양한 인구·사회학적 특성에 따른 사회적 관계망의 분포와 현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며 “사회적 관계망 향상을 위해 종합적으로 접근하고 다양한 주체들이 협력하고 참여할 수 있게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불만족의 정서를 건설적인 비판과 성찰로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끊임없이 경쟁하고 비교하는 심리를 당연하게 여겨온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해식 센터장은 “삶의 만족도가 높은 사회를 보면 일자리나 생활환경을 포함해 삶의 구석구석까지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우선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개인이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유를 찾으려는 시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을 감안할 때 한준 교수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그 수준을 충족하기도 어려워지는데, 경제력이나 지위를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자신의 처지를 파악하려는 문화가 만연하면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더욱 힘들어진다. 어찌 보면 한국의 삶의 만족도 순위가 국제적으로 낮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 역시 이렇게 비교를 일상화한 시각이 반영된 것 아니겠는가.”(경향신문, 2020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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