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재선 취임연설문은 고작 135단어에 불과했다. 연설에 걸린 시간이 2분이 채 못될 정도로 짧았다.
가장 긴 취임사는 1841년 3월4일 취임한 윌리엄 헨리 해리슨의 8천445단어 분량의 연설이다.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속에 2시간이 넘도록 연설에 매달린 탓인지 해리슨은 취임 한달만에 폐렴으로 숨졌다.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취임연설을 한 주인공은 가장 짧은 재임기간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해리슨의 장황한 연설 내용에 주목한 역사가들은 거의 없다. 연설은 간결할수록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법이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인 1869년 취임한 율리시스 그랜트는 취임사의 대부분을 전쟁부채에 관한 얘기로 채운 탓에 "대통령이 아니라 회계사 같다"는 냉소적인 평가를 받았다.
남북전쟁 발발 전인 1857년 취임했던 제임스 뷰캐넌은 "노예제 이외에 다른 문제로 눈을 돌린다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주장, 당시 최대현안이었던 노예제를 회피하는 겁쟁이라는 후세의 평가를 받았다.
같은 남북전쟁 시기에 최고의 명연설도 탄생했다.
게티즈버그 연설의 주인공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재선 취임연설은 역대 미 대통령 취임사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남북전쟁의 전세가 북부의 승리로 완전히 기울어졌던 1865년 3월4일 링컨은 "대통령 선서를 위해 두번째로 이 자리에 선 지금, 첫번째보다 긴 연설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아무에게도 적의를 품지 말고 모두에게 자선의 마음으로 의로운 편에 굳건히 서서 우리가 처해 있는 일을 끝내도록 노력합시다. 이 나라의 상처를 싸매도록 온 힘을 다합시다. 전투에서 쓰러진 사람과 미망인, 고아들을 돌보도록 애씁시다"라는 말로 연설을 마쳤다.
비교적 짧았던 링컨의 이 연설은 두개로 갈라진 미국을 통합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로 지금까지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
1801년 토머스 제퍼슨은 경쟁상대인 애런 바와 득표수가 같아 하원의 표결을 거쳐 대통령에 당선됐다. 두 후보간 박빙의 표대결이 이어졌던 것은 공화주의자와 연방주의자간 격심한 반목과 갈등 때문이었다.
제퍼슨은 취임사에서 "견해의 차이가 꼭 원칙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공화주의자이자 연방주의자입니다", "상대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자는 우리 사회 관용의 상징으로 내버려두자"고 역설, 화합을 도모했다.
미국민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는 위대한 취임연설들은 위기의 순간,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순간에 탄생했다.
대공황이 절정에 달했던 1933년 3월4일 취임한 루스벨트는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말로 좌절과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경제부흥의 의욕을 고취시켰다. 루스벨트의 이 취임사는 링컨의 재임 연설과 함께 최고의 명연설로 꼽힌다.
동서냉전이 고조되면서 핵전쟁의 공포가 엄습하던 1961년 1월20일 40대의 패기에 가득찬 존 F. 케네디는 "전쟁과 힘들고 쓰라린 평화에 의해 단련된 새로운 세대의 미국인에게 이제 횃불이 전달됐습니다"라는 말로 세대교체를 선언했다.
"두려움 때문에 협상해서는 안되지만, 협상하기를 두려워해서도 안됩니다", "인류가 전쟁에 종지부를 찍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의 종지부를 찍을 것입니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물으십시오" 등과 같이 교차대구법를 절묘하게 동원한 케네디 취임사의 명문장은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통찰하는 혜안이나 연설내용에 알맹이가 있었는지 여부를 떠나 명문장으로 채워진 케네디의 연설은 듣는 이에게 영감을 불어넣는다는 측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81년 극심한 경기불황속에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은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정부가 바로 문제 그 자체"라는 말로 신보수주의 이념에 바탕을 둔 `작은 정부'의 역할을 설파했다.
레이건 이후에는 명연설로 간주되는 수작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후 재임한 대통령들이 대부분 생존해 있는 탓에 그들의 취임사가 `역사'로 간주되기에는 연륜이 짧은 것도 이유지만, 취임사의 내용이 이후 그들의 행적과 정치기류과 일치하지 않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까닭이다.
빌 클린턴은 97년 두번째 취임식에서 "표독스러움과 분열"의 중단을 촉구했지만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과의 반목속에 르윈스키 스캔들로 탄핵위기까지 몰렸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2001년 취임하면서 클린턴의 스캔들을 겨냥, "남부의 건전한 기풍으로 낡고 부패한 워싱턴의 분위기를 바꿔놓겠다"고 다짐했지만 그의 8년간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20일 버락 오바마의 제44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은 미국 역사상 재선을 포함해 56번째로 열리는 대통령 취임식이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라는 경제위기속에 열리는 이번 취임식은 오바마에게는 연설을 통해 미국민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경기회복을 위한 의욕을 고취시켜야하는 또 하나의 도전인 셈이다. 그의 취임사가 역사에 길이 남을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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