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충렬왕(忠烈王11, 1285) 때 普覺國師 일연(一然:1206∼89)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遺事를 모아서 지은 역사서. 단군·기자·대방·부여의 史跡과 신라·고구려·백제의 역사를 기록하고, 불교에 관한 기사·신화·전설·시가 따위를 풍부하게 수록하였다. 삼국사기와 더불어 삼국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전해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오늘날 原版은 전하지 않고 조선 중종 7년(1512)에 5권 3책, 再刊된 것만 전한다.
저작과정과 시기는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으나 대체로 일연의 나이 70세(1276) 이후에 저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75세(1281) 이후 2, 3년 사이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것은 삼국유사가 마지막으로 정리되어 완성된 시기를 말하는 것일 뿐, 이 책의 방대한 내용이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저작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그 이전부터 부분적으로 기록해두었던 내용을 이때 집중적으로 정리하여 한 권으로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遺事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삼국사기에서 빠뜨린 것을 기워 보완한다는 성격을 가진다. 국가의 대사업으로 편찬된 삼국사기는 방대하고도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역사를 기술하는 태도와 자료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편찬자의 시각이 지나치게 합리성을 강조하고, 중국 중심적이어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소홀히 다루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기존의 역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불교적 측면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다룬 점은 승려인 일연의 입장에서 수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일연이 이를 저작할 당시는 중국을 지배하게 된 몽골의 침략이 계속되어, 중국에 대한 慕華思想이 비판되고 민족자주의식이 강하게 대두되던 시기였다. 일연의 저술의도에는 이같은 민족감정이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삼국사기에서는 가치가 없다고 제외시키거나 소홀히 다룬 자료들에 대해서 주목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결과 삼국사기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도 있고, 다르게 기술하거나 해석한 부분도 적지 않게 있다. 이런 면에서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서로 대조적이면서도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가진다. 삼국사기가 합리적이고 공식적인 입장을 취한 正史라면, 삼국유사는 초월적이고 종교적인 입장을 견지한 野史에 해당한다.
삼국유사는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내용상으로 대별하면 상·하 양권으로 구분되기도 하는데, 역사 사실을 주로 다룬 1, 2권은 상권에 해당하고, 불교 사실을 주로 다룬 3, 4, 5권은 하권에 해당한다. 보물 제419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실제 내용에서는 주제에 따라 다시 9개의 편목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제1권에서는 삼국 역대 왕들의 계통을 도표로 보인 王曆, 건국의 시조와 왕들의 사적을 다룬 紀異 2편이 들어 있다. 왕력편에서는 중국의 역사를 상단에 놓고 그 아래 신라·고구려·백제의 왕들을 시대적으로 배치하여 대비시켰다. 기이편은 제2권에까지 이어지는데, 전반부에서는 건국의 시조와 왕들을 중심으로 삼국과 그 주변 여러 나라의 유래와 역사를 이야기했다. 전반부에서 언급된 나라는 고조선을 비롯하여 위만조선·마한·진한·변한·대방·낙랑·가야·부여·말갈 등 수십 개국에 이른다. 후반부에서는 주로 신라의 역대 왕들이 중심이며, 마지막 부분에서는 후백제와 가락국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첨부했다. 제3권에는 불교를 전해준 여러 승려들의 사적을 다룬 興法, 사찰의 탑이나 불상, 건물 등에 얽힌 일화를 다룬 塔像 2편이 실려 있으며, 제4권에는 원광·자장·원효 같은 고승들의 학업과 공적을 실은 義解 1편이 실려 있다. 제5권에는 불교적 이적異蹟을 다룬 神呪, 수도승들과 신도들의 정진하는 모습과 덕행을 다룬 感通, 세속을 떠나 은둔하며 덕행을 닦는 승려와 신도들의 생활 및 사상을 이야기한 避隱, 효행의 미담을 전하는 孝善 등 4편이 실려 있다.

鄭夏英선생의 글을 참고하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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