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리지는 1425년에 발간된 『경상도지리지』를 비롯한 8도지리지를 모아 편찬한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를 수정하고 정리하여 1454년(단종 2)에 만들어졌다. 『세종장헌대왕실록』의 제148권에서 제155권까지 8도에 관한 내용이 8권으로 실려 있는데, 군현별 지명뿐만 아니라 경제․사회․군사․산업․지방제도 등과 관련된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지명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조선 세종(재위 1418~50) 때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책. 활자본(을해자). 163권 154책. 제1~127권은 편년체의 본문이며 제128~163권은 오례 8권, 악보 12권, 지리지 8권, 칠정산 8권으로 구성된 지(志) 부분이다. 앞머리에 권별 목록이 수록되어 있으며, 제1권의 총론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세종의 성장 및 즉위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다. 행장·지문 등이 별도로 실려 있지 않으며 명나라 예부(禮部)에 보낸 고부문(告訃文)에서 재위기간 중의 주요 치적을 상세히 소개하였다. 1452년(문종 2)에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정인지(鄭麟趾) 등이 총재관이 되고 편수관 박팽년, 기주관(記注官) 신숙주, 기사관(記事官) 김명중(金命中) 등 약 60명의 인원을 6방으로 나누어 각기 6,7년간의 기사를 분담하도록 하여 편찬을 시작하였다. 강목체의 성격이 더해진 태종실록과는 달리 처음부터 편년체로 편집되었으며 세종조에 이루어진 문화정리사업을 기록하기 위하여 별도로 지(志)를 붙였다. 편찬과정에서 사신(史臣)이 황희·최윤덕에 대해 기록한 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총재관들이 내용을 고쳐 기록한 사건이 있었고, 기주관이 사초에 기록된 재상에 대한 일을 집안에서 누설하여 문제가 된 일도 있었다. 계유정난으로 황보인과 김종서가 피살되어 정인지가 최종 감수를 담당하였으며, 54년(단종 2)에 필사본 실록이 완성되었다. 73년(성종 4)에 활자본 3부를 추가로 간인하였으며 임진왜란으로 전주사고본만 남고 모두 소실되자 1606년에 다시 4부를 인출하였다. 세종 때만이 아니라 조선 초기의 사회·문화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사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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