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현종대(1660~74)에 반계 유형원(柳馨遠)이 편찬한 사찬(私撰) 전국 지리지.
조선시대 사상사에서 17세기 중, 후반의 시기는 주자성리학이 대세가 되어가면서도, 이에 대한 비판으로 새로운 학풍인 실학이 대두되는 시기였다. 이 시기 실학을 체계화한 학자가 바로 유형원이다.
유형원은 북인이었던 부친 유흠이 인조대에 광해군의 복위를 꾀하였다는 혐의에 연루되어 사망하자, 관직에 뜻을 버리고 조상 대대로 하사받은 전북 부안의 우반동을 중심지로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의 호 반계는 '우반동의 계곡'이라는 뜻에서 따온 것.
동국여지지는 9권 10책. 필사본. 편찬 연대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효종조까지의 내용이 있고, 1662년에 허목이 편찬한 〈척주지 陟州誌〉가 참고도서 목록에 있어 현종대 반계 유형원의 저작으로 추정된다. 책머리에는 사요총목(事要總目)·범례(凡例)·찬집제서(纂輯諸書)·목록후(目錄後) 등을 수록하여 책의 항목과 체제, 항목의 수록 내용, 참고 서적을 밝혔다. 도별 지지는 군현 단위로 서술되어 있는데, 4권의 상(上)으로 목록에 기록된 경상좌도 36개 읍이 결본이다. 범례에 따르면 이 책은 조선 전기 지리지의 완성편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증수하는 것을 1차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된 지 130여 년이 지난 시기에, 그리고 임진·병자 양난을 겪은 후에 편찬되었으므로 조선 전기와 후기를 연결해주는 전국 지지로서 의의가 크다. 또한 개인이 편찬한 최초의 전국 지리지이기도 하다. 특히 여지승람과 다른 점은 여지승람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한전(旱田)·수전(水田) 등 토지 면적을 항목으로 설치하고 그 단위를 경(頃)으로 한 점이다. 국가의 공식적인 토지 단위인 결부법(結負法)을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각 군현마다 이 항목은 공백으로 남겨졌는데, 이는 토지제도 개혁을 중시했던 반계의 사회개혁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1983년 아세아문화사에서 한국지리지총서 〈전국지리지 3〉으로 영인 발간하였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남해군의 경우 旱田과 水田이 처음에 기록되고, 郡名이 轉也山으로 표기되며 別號가 나타나지 않는다. 形勝, 風俗, 山川, 土産, 城郭, 公署, 戶鎭, 學校, 宮室, 名宦, 人物, 烽燧, 郵驛, 關梁, 祠廟, 寺刹, 古蹟 등이 표시된다. 興善島에 牧場, 赤梁萬戶鎭(石城과 水軍萬戶), 晉州의 古蹟에 永善廢縣, 興善廢縣(所藏國史移于珍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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