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학자 한백겸(韓百謙)이 한국 지리에 관한 사항을 여러 고서(古書)에서 뽑아 엮은 책. 목판본. 1책. 1640년(인조 18) 아들 교흥(敎興)이 간행한 내용은, 중국 《사서(史書)》의 열전(列傳)에 기록된 부족국가에 대한 서술을 인용해 쓴 부분, 삼국(三國)에 대한 서술부분, 고려에 대한 서술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한서(前漢書)》 <조선전(朝鮮傳)>, 《후한서(後漢書)》 <고구려전>, 《후한서》 <예전(濊傳)>, 《후한서》 <읍루전(婁傳)>, 《후한서》 <삼한전(三韓傳)>, 그리고 사군(四郡)·고구려 제성(諸城)·백제 국도(國都)·신라 소병지(所幷地), 고려의 제경(諸京)·진(鎭)·부(府)·현(縣) 등에 관한 기사를 거의 그대로 인용하여 기록하였으며, 여기에 곳곳에 사견(私見)을 덧붙여 수록하였다. 역사적인 면이 강조되어 있는 일종의 역사지리책이다.

구암 한백겸은 대대로 벼슬을 해온 세족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국지리지』(東國地理誌)의 저자로서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왔으나 정작 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즉 조선 후기 역사지리학파의 선구적인 저술인 『동국지리지』에 나타난 그의 역사지리 연구에 대한 성과에 대해서는 많은 글들이 있으나 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서는 근년에 몇 편의 글이 있을 뿐이다.
그는 대동법 시행 제안자의 한 사람이었고, 후대 실학자들의 기전론의(箕田論議)의 단서를 열었다. 그의 이기론(理氣論)은 유형원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그의 학문방법은 문헌고증의 실증적 방법에 기초하였다. 그가 『동국지리지』를 저술하게 된 동기는 오운(吳澐)의 『동사찬요』(東史纂要)를 읽고 거기에 저술된 3한과 4군의 위치비정에 대하여 많은 의문을 가지고 이를 시정해보려는 욕구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이는 종래의 학설이나 견해를 그대로 묵수하지 않는 그의 비판적·실증적 학문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나아가 그가 역대의 역사지리에 대해 관심을 갖는 현실적 동기를 본다면 당시 후금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형세와 관방(關防)의 위치를 파악해보려는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동국지리지』는 이전의 다른 사서(史書)와 비교해볼 때 역사적 사실의 진부(眞否)에 관심이 있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치적 평가나 도덕적 평가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그만큼 한백겸의 학문적 태도가 실증적이고 고증적인 데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경전을 근거로 해서 선유(先儒)들이나 주자의 견해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의문을 제기하는 비판적 태도와 문헌고증적인 그의 학문방법은 초기유학에로 복귀하려는 고전적 실사구시학(實事求是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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