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이동

by 임종옥 posted Mar 2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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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구 이동의 요인
인구 이동은 그 동기에 따라 강제 이동과 자발적 이동, 또 이동 범위로 보아 국내이동과 국제이동, 시간적으로는 영구적 이동과 일시적 이동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인구 이동은 출산력이나 사망력과 함께 한 지역의 인구 성장 과정이나 인구의 규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 뿐만 아니라 인구 이동은 해당 지역에 각종 사회, 경제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특히 선별적 인구 이동의 영향으로 일반적으로 전출지에서는 청장년층의 인구가 줄어들어 출생율이 낮아지고,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거주지를 이동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동 동기는 기원지의 조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이동하게 되는 배출요인과 그 반대로 목표지의 조건이 좋아서 이동하는 흡입요인으로 분류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인구 이동의 원인은 직업과 소득면에서 이득을 얻기 위한 경제적 요인과 문화시설, 교육, 종교 등 보다 좋은 환경을 찾아 이동하는 문화적 요인, 인구 정책에 의한 정치적 요인 등이 있다.

2) 국내 이동
① 남에서 북으로의 이동
1945년까지는 남부의 인구가 북부로 이동된 시기이다. 조선 세종 때에는 최윤덕 등은 압록강 유역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4군을 설치하였고, 김종서 등은 두만강 유역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6진이 설치하였다. 이로써 조선의 북방 영토는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까지 확장되었다. 이에 정부는 변경 지방을 개척하기 위하여 북방 사민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여 남부의 주민을 북부로 이주시켰다. 일제 강점기에는 빈번한 자연 재해와 일제의 토지 수탈 등으로 이주자가 속출한 시기였다. 특히, 일제가 한반도를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 기지로 이용하였던 1930년대 이후에는 지하 자원과 수력이 풍부한 관북 지방에 광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노동력이 부족하여 남부의 농업 지역에서 북부의 광공업 지역으로 인구가 이동하였다.

② 북에서 남으로의 이동
1945년에서 1960년 사이에는 북부에서 남부로 인구의 대이동이 진행되었다. 광복 직후에는 해외 동포들이 귀국을 했으며, 광복과 6.25 전쟁을 겪는 동안에는 많은 북한 동포들이 월남하였다. 광복 직후는 약 180만 명, 6.25 전쟁 중에는 약 100만 명이 월남하여 대부분 도시 지역에 정착함으로써 도시의 비정상적인 성장을 초래하였다.

③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동
1960년 이후는 경제 개발에 따라 농촌에서 대도시와 신흥 공업 도시로 이동하는 이촌 향도 현상이 뚜렷하다. 공업에 기반을 둔 산업화 정책은 대도시에 많은 고용 기회를 창출하여 농촌의 많은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였다. 이촌 향도 현상으로 1960년에 약 20%였던 도시 인구율이 1993년에는 약 84%로 증가하였다.

④ 최근에는 농촌 인구의 감소로 농촌의 이동 가능 인구는 줄어들고 도시의 이동 가능 인구는 늘어나게 되어 도시간의 이동이 활발하다. 특히 대도시에서 주변의 위성 도시와 신도시로의 인구 이동이 활발하여 역도시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3) 국외 이동

① 광복 전
  우리 나라 최초의 국외 이동은 조선 말기에 간도 지역으로의 이동이다. 많은 농민들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간도를 포함한 중국 동북 지방으로 이주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 나라의 많은 농민들은 일본인과 한국인 지주에게 토지를 잃고 소농이나 소작농으로 전락하여 생활이 궁핍해졌다. 이로 인해 많은 농민들이 만주나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만주 지방의 한국인은 한일 합방 당시 약 20만을 헤아리던 것이 1930년에는 약 60만으로 늘어났고, 그 이후에는 매년 10만 이상씩 이주하여 해방 직전에는 약 200만에 이르렀다. 간도 지방에는 약 70만이 이주하여 벼농사를 전파하는 한편 한국인 촌을 이루었다. 그리고 연해주 지방으로 이주한 한국인은 약 20만에 달했다.
  일본으로의 이주는 1915년까지도 약 5천 명에 불과하던 것이 1930년에는 40만 이상, 특히 1939년부터는 한국인에 대한 징병과 징용이 실시됨에 따라 해방 직전에는 약 210만으로 늘어났다. 징용을 당한 한국인은 오사카를 비롯하여 북큐슈, 도쿄, 나고야의 공업 지대와 그 밖의 탄광 지대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었다.
  해방 당시 재외 한국인의 수는 소련의 약 20만, 미국과 기타 지역의 약 3만을 포함하여 약 500만이었는데, 그것은 당시 국내 인구의 약 1 / 6에 해당하는 수였다. 해방 후 해외에서 귀환한 동포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150-200만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오늘날 재외 한국인은 일본에 70만, 만주에 약 160만, 연해주와 사할린에 약 10만, 중앙 아시아에 약 30만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 아시아의 한국인은 연해주 지역에 거주하던 동포들이 구 소련 정부에 의하여 강제 이주한 사람들이다.

② 광복 후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여러 나라에 농업 이민을 보내기 위해 1962년 해외 이민법을 시행한 이후 국내 정치 상황이 불안정했던 1970년대에 활기를 띠었다. 남아메리카로의 농업 이민은 1970년대에 많았으나 거의 중단되었고, 근래에는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로의 이민이 늘어났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이민을 가장 많이 받아들이는 나라는 미국이다. 1994년의 재미 교포는 166만이었다. 이들의 약 30%는 캘리포니아주에 집중되어 있으며,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에는 코리아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이밖에 뉴욕·시카고와 같은 대도시에도 교포가 많다.
  1960년대부터는 유럽으로의 광부 및 간호사의 진출과 서남 아시아·북부 아프리카로의 건설 기술자 및 기능공의 진출 등 취업 이주도 있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우리 나라가 경제 성장을 이룩하여 경제적인 이유에 의한 해외 이민은 감소하는 추세이다. 1993년 현재 해외 동포는 중국에 가장 많고, 그 다음은 북아메리카, 일본에 많으며 러시아 및 그 주변 국가에도 거주하고 있다.
  국내인의 국외로의 이동뿐만 아니라, 그 규모는 작으나 국외인의 국내로의 이동도 있었다. 개항 이후부터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 및 중국인의 이동이 있었고, 6·25 전쟁을 계기로 미국 군인의 가족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우리의 경제 수준이 향상되면서 동남 아시아 지역을 비롯한 저개발국의 노동자들이 많이 유입되고 있다.

Who's 임종옥

profile

임종옥 (Jongox Lim)


-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학과 학사. [지리교육학전공]

-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학과 석사. [지리교육학전공]

- 부산대학교 대학원 사회교육학과 교육학박사. [지리교육학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