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여상 6명·천안여상 4명 등의 합격자 배출
학과성적 상위 30%, 필기·면접 등 거쳐 합격
"1학년 때부터 공무원되기 위해 체계적으로 공부"
정부·정치권 "고졸 공직 진출 위해 확대해야"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과 선생님의 격려 덕분에 이런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됐네요. 공시(공무원시험) 준비하는 언니, 오빠들. 우리가 먼저 시작할게요. 내년에 반가운 얼굴로 만나요."
대전여상은 올해 치러진 9급 공무원 시험에서 6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대전지역 12개 직업계고 합격자 11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규모다. 정부가 특정 학교에 합격자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학교당 지원자를 7명으로 제한한 가운데 6명의 합격자를 낸 것이어서 대전은 물론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다. 천안여상도 올해 4명(일반직)이 합격했다. 3년 내내 방학에도 학교에 나와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준비한 결과다.
인사혁신처·교육부와 경기·대전·충남·대구교육청 등에 따르면 올해 정부는 직업계고(특성화고·마이스터고 등)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선발시험을 거쳐 9급 공무원 210명을 뽑았다. 일반직이 160명, 기술직이 50명이다. 전국에 직업계고가 600여 개인 점을 고려하면 3개 학교에서 평균 1명씩의 합격자를 배출한 셈이다.
지역인재 선발은 지역 균형발전과 고졸 출신의 공직 진출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로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시작했다. 첫해 시험의 경쟁률은 11.4대 1이었다. 올해 경쟁률은 5.0대 1이었다. 선발 인원은 104명을 시작으로 매년 증가해 2014년엔 140명, 지난해는 180명, 올해는 210명까지 늘었다. 정부는 2022년까지 일반공채(9급)의 20%까지 지역인재 선발시험 비율을 높일 방침이다.
학생들은 3년간 공무원 시험준비만 한 게 아니다. 합격자 대부분 10~20여 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합격생 중에는 자격증을 23개나 보유한 학생도 있다. 당장 업무를 시작해도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각 학교의 지도교사들이 “준비된 공무원”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대전여상은 맞춤형 취업지도 시스템을 만들고 지역인재 선발에 대비, 공무원 전공 심화 동아리를 운영했다. 필기시험 과목인 국어와 한국사, 영어 등 3과목도 단계적으로 준비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대전여상의 9급 시험합격은 2013년 이후 올해까지 12명으로 늘었다.
9급 시험에 합격한 대전여상의 한 학생은 “공무원이 되기 위해 1학년 때부터 동아리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준비했다”며 “3년간 방학 때도 학교에 나와 필기특강과 면접 특강을 들으며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천안여상의 한 여학생은 “중학교 때부터 대학 진학보다는 공무원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이뤄져서 정말 기쁘다”며 “공무원을 하면서도 대학에도 다닐 수 있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는 올해 국가직 9급 시험에 36명이 합격했다. 매향여자정보고와 삼일상고가 각각 4명으로 가장 많고 경기국제통상고·한국디지털미디어고 등이 각각 3명씩이다. 36명의 합격자 가운데는 일반직이 22명으로 가장 많았다.
대구지역에서는 2012년 3명을 시작으로 매년 3~7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올해까지 34명이 지역인재 9급 선발시험에 합격했다. 지난해 단 2명이 합격했던 대전에서는 올해는 11명이 합격의 문을 통과했다. 충남에서는 천안여상을 비롯해 9명이 합격했다. 일반직이 7명으로 가장 많고 세무·회계와 전기 직종이 각각 1명씩이다. 2017년에는 6명, 지난해는 3명의 합격자를 냈다.
지역인재 9급 시험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내신성적이 가장 중요하다. 전체 9등급 가운데 3.5등급 이내에 들어야 학교장의 추천을 받을 수 있다. 추천을 받은 학생들은 필기시험(국어·영어·한국)과 서류전형, 면접시험을 거쳐 최종 합격자에 이름이 오르게 된다.
정부는 특정 학교에 합격자가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학교 당 지원자를 7명으로 제한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학생들은 중학생 때도 성정이 우수해 일반계고 진학이 가능했다. 하지만 취업과 진학을 동시에 준비할 수 있고 공무원·대기업·금융권 등 대졸자도 들어가기 힘든 분야에 빠르게 취업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직업계고를 선택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번에 합격한 여학생 대부분 중학교 때 성적이 상위권이었다.
국가직 9급 시험 외에도 각 자치단체(시·군)와 교육청 등에서 선발하는 공무원 시험에서도 직업계고 학생들이 누각을 나타내고 있다. 2017년 충남도가 진행한 9급 공무원 시험에서 단 한 명도 합격자를 배출하지 못했던 충남지역 직업계고는 지난해는 토목직을 중심으로 8명이 합격했다. 부사관 시험 역시 매년 증가세를 보이면서 2017년 41명, 2018년 50명 등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경북 상주의 특성화고인 상주공고는 2012년부터 각종 공무원시험에서 97명이 합격했다. 매년 합격자 수가 20여 명가량으로 1개 학년당 정원이 220여명인 점을 고려하면 10명 중 1명이 공무원이 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직업계고 학생들의 공직 진출을 돕기 위해 채용 인원을 늘리고 기술직으로 제한된 자치단체 채용도 일반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직업을 선택하는 데 문제가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정부에서 ‘고졸 채용’을 독려하고 있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채용조건으로 ‘군필’이나 ‘병역 면제자’ 선발하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학교 현장의 목소리다. 이 때문에 기업체 취업 대신 공무원 시험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취업준비생과 공무원 준비를 하는 수험생들은 ‘일반 공채’와 형평성 등을 이유로 폐지 또는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지역인재 채용 경쟁률이 5대 1수준인데 일반 공채는 39.2대 1(2019년 기준)에 달한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정부와 정치권은 “고졸 출신의 사회진출을 돕기 위해 필요한 제도로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019년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현장시찰에 나선 의원들이 질의를 하고 있다. [사진 조승래 의원실]](https://t1.daumcdn.net/news/201912/02/joongang/20191202050109123dyos.jpg)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학생들은 내년 2월 졸업 때까지는 학교에 다녀야 한다. 졸업 이후에는 직능(부처)별로 연수와 교육을 거쳐 부서에 배치된다. 학생들은 공무원에 임용 뒤 원하면 언제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자신이 맡은 업무와 관련된 학과에 진학하면 국가에서 학비를 전액 지원한다. (중앙일보, 2019년 1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