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훌륭한 가문 덕택에 과거시험을 보지 않고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승진에 제약이 있어 상당수가 다시 과거를 보는 경향이 뚜렷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음서제(蔭敍制) 혹은 문음제(門蔭制)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잘난’ 조상을 둔 집안 자제들의 벼슬길을 보장하는 제도였다. 그러나 조상의 공훈으로 벼슬길에 나아가더라도 고위직까지 올라가기는 어려웠다. 승진에서 과거 급제자들과 차별을 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음서제로 관직에 올랐다 해도 다시 과거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선 연산군 때의 문신 강구손(1450~1505)은 문음으로 관직에 진출한 뒤 1479년 별시 문과에 급제해 이조판서까지 수직 상승했다. 조선 세조 때의 문신 김질(1422-1478)도 문음으로 관직에 나아가 다시 과거를 통해 우의정까지 올랐다. 가문이 좋은 데다가 과거급제까지 더해지자 승진에 날개를 달았던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이 최근 확충한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에는 이처럼 문음으로 벼슬길에 올랐다가 다시 과거를 본 ‘고시파’ 관료들의 정보가 구축돼 있다. 한중연은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의 기존 자료에다 조선시대 무과 합격자 1만여명, 음관 2600여 명, 고려문과 합격자 1500여 명의 정보, 성씨 본관 정보 등을 추가했다”고 7일 밝혔다.
한중연은 2005년에 처음 구축한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을 통해 인물사전과과거합격자 정보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9만여 명의 정보를 구축했다. 한중연 원장은 “여러 문헌에 흩어져 있는 인물정보들을 한 곳에 모아 제공함으로써 인물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이 쉽게 연계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뢰성 높은 인물 정보의 근거를 제시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헤럴드경제, 5월 7일)
당시 음서제(蔭敍制) 혹은 문음제(門蔭制)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잘난’ 조상을 둔 집안 자제들의 벼슬길을 보장하는 제도였다. 그러나 조상의 공훈으로 벼슬길에 나아가더라도 고위직까지 올라가기는 어려웠다. 승진에서 과거 급제자들과 차별을 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음서제로 관직에 올랐다 해도 다시 과거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선 연산군 때의 문신 강구손(1450~1505)은 문음으로 관직에 진출한 뒤 1479년 별시 문과에 급제해 이조판서까지 수직 상승했다. 조선 세조 때의 문신 김질(1422-1478)도 문음으로 관직에 나아가 다시 과거를 통해 우의정까지 올랐다. 가문이 좋은 데다가 과거급제까지 더해지자 승진에 날개를 달았던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이 최근 확충한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에는 이처럼 문음으로 벼슬길에 올랐다가 다시 과거를 본 ‘고시파’ 관료들의 정보가 구축돼 있다. 한중연은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의 기존 자료에다 조선시대 무과 합격자 1만여명, 음관 2600여 명, 고려문과 합격자 1500여 명의 정보, 성씨 본관 정보 등을 추가했다”고 7일 밝혔다.
한중연은 2005년에 처음 구축한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을 통해 인물사전과과거합격자 정보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9만여 명의 정보를 구축했다. 한중연 원장은 “여러 문헌에 흩어져 있는 인물정보들을 한 곳에 모아 제공함으로써 인물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이 쉽게 연계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뢰성 높은 인물 정보의 근거를 제시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헤럴드경제, 5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