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혼일강리 역대국도지도
지도를 만드는 데 참여한 권근의 발문에 의하면, 이 지도는 중국에서 들여온 혼일강리도와 성교광피도를 좌정승 김사형과 우정승 이무와 이회가 검토한 후 합쳐 하나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교광피도에는 요수(遼水, 중국의 랴오허) 동쪽과 우리나라가 자세하게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일본에 대한 지도를 첨부하여 새로운 지도로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혼일강리 역대국도지도는 이택민의 성교광피도에서 아랍지역을, 청준의 혼일강리도에서 중국을, 이회의 팔도지도와 동서가 남북으로 된 행기도(行基圖)에서 각각 우리나라와 일본을 참조한 것이다. 따라서 이 지도는 아랍,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 지도가 합쳐져서 편집된 세계 지도이며, 유럽과 아프리카의 지명은 성교광피도에서 인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혼일강리 역대국도지도에는 신대륙이 빠져 있는데, 이는 이 지도가 신대륙 발견(1492)보다 무려 90년이나 앞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사료된다. 또한 권근의 발문에서 성교광피도는 지도로서 매우 상세한 지도였고 혼일강리도는 역대 국도연혁이 상세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지도의 윤곽, 지명, 산계와 하계망 등은 성교광피도에 따랐고, 지도 상단에 기록된 역대제왕의 국도연혁은 혼일강리도에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이 두 지도는 모두 한국과 일본이 결여된 지도라고 생각된다. 중국의 세계지도는 중국을 중앙에 위치시키고 변두리 지역은 매우 간략하게 그리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은 이회가 새로 편집하여 추가하였다고 생각된다. 이회가 추가하여 보충한 우리나라 지도는 태종2년(1402)에 조정에 바쳤다는 이회가 만든 팔도지도로 추정된다. 이회가 보충한 일본지도는 박돈지가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 건문 3년(태종 1년,1401)일본의 비주수 원상조 소장의 일본도를 얻어 모사하여 들여온 것이다. 지도를 얻은 경위와 그것을 모사하고 지문을 붙여 예조에 바쳤다는 기록을 세종실록 권80(20년 2월 19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대외적으로 불안정한 북방 영토 및 고려 말 이후 잦은 왜구의 침입 등에 대비하기 위해 세계 지도의 제작을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지도 제작은 행정과 국방상의 필요성 이외에 조선 왕조의 국가적 권위와 왕권을 확립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조선은 세계지도를 만들기 위해 우선 사신을 통하여 다른 나라의 지도를 수집하였다. 그리고 지도 제작에 조정의 중신들이 직접 참여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에서 세계 지도의 제작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사업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혼일강리 역대국도지도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면 지도 가운데에 중국이 있고, 중국 오른편에는 조선과 일본이, 왼편에는 아프리카와 유럽이 자리 잡고 있고, 중국과 조선은 매우 정확하며, 하천과 도서를 자세히 기입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강은 매우 자세히 표현되어 있어, 중국 남부 지방은 마치 수많은 섬처럼 보인다. 그 중에서도 중국의 황하(黃河)는 다른 강들과 달리 노란색으로 표현되었으며, 만리장성도 뚜렷이 나타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산줄기가 비교적 자세히 표현되어 있어 두 나라의 지형적 특징을 비교할 수 있다. 일본은 비록 방위는 틀리지만 혼슈(本州)와 큐슈(九州)의 형태가 비교적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 지도의 가장 큰 특징은 한반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크게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일본 루꼬꾸 대학 도서관 소장인 이 지도의 일본도는 교끼도라고 불리는 가장 오래된 일본지도로서, 일본의 북동부 지방이 돌출부로 나타나며, 큐슈가 원형이고 시꼬구 지방이 간략하게 나타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일본지도의 방위가 서쪽이 북쪽이 되어 있고, 동쪽이 남쪽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방위의 오류는 일본 전체에 대한 방위가 확실하지 않았다고 생각 할 수 있고, 또 서쪽을 지도의 상부로 하고, 동쪽을 지도의 하부로 그린 일본지도를 그대로 우리나라 남쪽에 그려 넣었다고도 추측된다. 이러한 오류는 1988년 일본 큐슈 시마바라의 혼꼬지에서 발견된 또 하나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는 일본도의 방위가 정상화 되어있다. 혼일강리 역대국도지도는 마테오리치의 곤여만국전도가 17세기 초에 출현하기 전 까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지도일 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고려시대의 우리나라 지도를 엿 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