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조선은 격랑의 시대였다. 왕조 말기 어지러운 국내외 정세 속에서도 새로운 문화는 꽃피었다. 상업과 도시 문화가 발달해 부(富)를 축적한 중인(中人) 계층이 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지식인들은 점점 더 바깥 세계에 눈을 떴고, 안녕하고 복된 삶을 기원하는 풍조가 왕실부터 사대부, 민간에까지 퍼진다.
이화여대박물관 특별전 ‘19세기 조선의 풍경’은 이처럼 다양한 이 시대 모습을 만화경처럼 보여준다.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영향을 받은 여항(閭巷) 문인들의 작품부터,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2년 뒤 거행된 발인 행렬을 그린 ‘명성황후 발인반차도’까지 190여 점을 펼쳤다.
골동품 수집과 감상, 소나무·매화 분재, 바둑이나 담배 같은 취미 문화의 확산은 이 시대 중인 계층의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 서책과 각종 기물을 그린 책거리 병풍에는 학문을 추구하는 문인적 이상과 물질에 대한 세속적 욕망이 동시에 투영됐다. 매화를 좋아해 즐겨 그렸다는 조희룡의 ‘묵매도(墨梅圖)’, 수묵으로만 그린 책거리 10폭 병풍,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운계시첩(雲階詩帖)’ 등이 1전시실에 모였다.
2전시실은 새로운 문물과의 조우를 보여준다.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의 수행 비서로 미국 워싱턴에 머물었던 강진희가 1888년 그린 ‘잔교송별도’는 미국에서 조선으로 먼저 돌아가는 일행과 헤어지는 아쉬움을 담은 그림. 부둣가 잔교에 선 두 사람이 바다로 떠나는 배를 바라보는 장면을 옅은 먹으로 그렸다. 화면 왼쪽엔 “함께 오고 함께 가자고 올 때 약속했건만/ 오늘 아침에 나만 남을 줄 어찌 알았으랴/ 무자년 10월 16일/ 사절 일행이 먼저 돌아가기에 섭섭함을 가눌 수 없어 이것을 그려 마음을 달랜다”는 제발을 썼다.
그 옆에 나란히 걸린 ‘태평항해도’ 역시 당대의 풍경을 증언한다.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한가운데 배 한 척이 떠 있고, ‘민영익이 화가 장승업에게 주문해 그렸다’는 제발이 적혀 있다. 외교사절단 보빙사를 이끌고 미국으로 떠나는 바닷길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거센 파도와는 대조적으로 배 위의 관료 세 사람은 평안하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각종 회화와 백자, 공예품에 채워진 3전시실의 길상(吉祥) 문양도 볼거리.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염원하며 19세기에 활발하게 제작된 ‘요지연도’를 영상으로 펼치고, 마지막 전시실엔 전체 길이 21m가 넘는 ‘명성황후 발인반차도’를 실사 출력해 3면을 가득 채웠다.(조선일보, 2020년 11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