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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부모 직업 묻는 사립학교들

지난 2019년, 채용절차법이 개정됨에 따라 30명 이상의 상시 근로자가 있는 사업장이라면 구직자의 키나 외모 같은 신체적 조건, 구직자의 출신지와 혼인여부, 재산 그리고 구직자 부모 및 형제자매의 학력과 직업, 재산을 입사 지원서 상에 기재하도록 요구하거나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없게 됐습니다. 평가에서 차별을 초래할 수 있는 개인정보들을 요구하는 것조차 부당하다는 겁니다.

당연히 사립학교도 채용절차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하지만, 사립학교들은 이 정보들을 여전히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기간제 교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서울의 한 유명 사립초등학교에서는 지원자 부모의 최종 학력과 직업, 직위를 버젓이 지원서에 쓰도록 했고, 다른 사립고등학교는 정당 가입 여부까지 지원서에 기재하도록 했습니다. 불법인 걸 알면서도 교사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따르던 지원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막상 지원서에 이렇게 요구하는 걸 보면, '과연 내가 이 학교에 지원을 해서 교사가 돼도 행복할까' 이런 의문도 들고.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지원서를 작성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 많이 속상하고 그런 현실이 제일 안타깝죠." - 교사 임용 준비생 인터뷰 중에서 -

법을 어기는 학교가 한두 곳이 아니라는 지원자의 말에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립학교들이 법을 어겨가며 교사들을 뽑고 있는지.

● 서울 소재 사립학교 지원서 전수 조사

전국의 모든 사립 초·중·고등학교들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립학교가 가장 많이 몰려있는 서울의 사립학교들을 전수 조사했습니다. 조사 대상을 추려보니, 지난해 교원을 새로 임용해 교육청에 보고를 마친 사립학교 173곳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6곳은 지난해 신규 교원(정교사)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지원자의 출신지, 결혼 여부, 부모나 형제자매의 학력 및 직업 등을 지원서에 기재하도록 했습니다.

생각보다 적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교사 지원자에게는 묻지 않았더라도 기간제 교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선 여전히 부모의 직업과 학력을 묻고 결혼 여부를 묻는 학교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학교들은 왜 법을 어겨가며 묻고 있는 걸까. 유독 기간제 교사를 채용할 때는 부모 직업을 왜 기재하도록 했을까.

해당 학교의 입장을 들어보니, 대부분은 담당자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담당자가 법이 바뀐 사실을 모르고, 법 개정 이전부터 쓰던 지원서 양식을 계속 사용하고 있었단 겁니다. 그러면서도 부모의 직업이나 결혼 여부, 출신지를 이유로 특정 구직자를 차별하거나 우대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지원자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학교 입장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담당자의 실수였겠지만, 어떤 지원자는 부당한 요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교사라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 사립학교가 종교를 묻는 건 괜찮다?

전수조사를 하면서 정교사 임용 과정에서 종교를 지원서에 쓰도록 하는 학교들도 상당수 발견했습니다.(사립학교 173곳 가운데 15곳) 단순히 믿는 종교만 쓰는 게 아니라, 교인 확인서를 목사로부터 받아서 제출하거나 출석 교회, 신앙 기간 등을 지원서에 쓰도록 했고, 자기소개서에는 자신의 신앙관과,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도 설명하게 하는 사립학교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종교를 묻는 학교들은 종교 재단에서 설립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설립 이념에 맞는 지원자를 찾기 위해 관련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데 교육 당국이 문제 삼는 건 지나친 간섭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취재과정에서 "이 정도도 묻지 못하냐?"는 취지의 사립학교 측의 반론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종교 등을 이유로 고용관계에서 누군가를 차별한다면 그것 역시 명백한 법 위반 행위입니다.(직업안정법 2조) 이는 교인이 아니면 지원할 수 없게 하거나 특정 종교를 가진 지원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을 비롯해 종교가 임용 및 채용 과정에서 평가 요소로 작용하는 모든 상황을 의미합니다. 교육 당국이 종교 관련 사항들을 지원서나 면접에서 묻지 못하도록 사립학교들을 지도 감독하는 건, 채용 과정에서 차별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섭니다. 차별을 통해서라도 자율성을 유지해야 한다면, 존중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 공정 채용의 제도화

전수조사 결과, 지난해 정교사를 채용한 173곳의 사립학교 가운데 20곳은 부모의 직업이나 학력, 지원자의 결혼 여부 등을 묻거나 종교 관련 사항을 지원서에 기재하게 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정교사를 채용한 사립학교 10곳 중 한 곳은 지침을 어긴 셈입니다. 교육청에서 지도감독을 하고 있지만, 사립학교의 지침 위반은 왜 계속되는 걸까.

일선 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문제가 드러난 사립학교에 한해 감독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감독해야 하는 학교 수가 너무 많아서 사전에 지도감독하며 부정 채용 문제를 예방하기보다는 부정이 발생한 후에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처럼 지원자들도 묵인하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면 사립학교 부정 채용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립학교의 채용 절차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사립학교가 원한다면 서류접수부터 필기시험 절차까지 교육 당국에 위탁할 수 있습니다. 사립학교 입장에서는 채용 절차 일부를 위탁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교육 당국 입장에서는 공정성이 검증된 공립교사 임용 절차를 사립학교에 적용할 수 있어 윈-윈 할 수 있는 제도화의 한 사례입니다. 하지만, 의무로 규정한 건 아니다보니 위탁 비율은 지역별로 제각각입니다. 위탁 비율이 가장 낮은 서울은 38.3%에 그치고, 전국 평균은 68% 수준입니다. 교육계에선 보다 공정한 채용을 위해서는 '위탁 의무화'를 법률로써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필기 이후 치러지는 실기와 면접 과정에서도 사립학교 측이 지침을 위반하면서 지원자들에게 특정 정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사립학교의 임용 면접 과정에 교육청 추천 인사가 반드시 참여하도록 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강원교육청에선 사립학교들과 협약을 맺고 교육청 추전 인사가 채용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sbs, 2021년 0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