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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종합대학에서 학위수여식을 마친 졸업생이 눈 내린 운동장을 걸어가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올해 역대 최초로 10만명 넘을 듯…

코로나 겹쳐 취업시장 더 얼어붙어

“2년 사이에 너무 많이 바뀌어버려서…. 아무 생각도 안 들어요.”

학위수여식도, 졸업 가운도 없었다. 김윤호씨(28)는 대학원 석사과정의 절반을 코로나19와 함께 보낸 끝에 결국 대학원 문을 나섰다. 그는 어느 직장에서 일할지 결정할 수 없었다. 그가 결정할 수 있었던 건 박사과정에 진학할지 여부뿐이었다. 갑작스럽게 불어온 고용 한파는 인문·사회계열 중에선 그나마 취업 걱정은 덜하다고 생각했던 경영학 전공자마저 갈 곳을 잃게 했다. 김씨는 당초 대학원 입학 때부터 석사까지만 한 뒤 취업할 계획이긴 했지만, 코로나19로 전체 취업시장이 얼어붙은 것은 물론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상황에서 박사과정을 택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석사 딴 뒤 갈 곳 없는 동기 중에 박사로 간다는 애들이 있긴 했어도 당장 취업을 안 해도 버틸 여력이 있으니 그런 것”이라며 “박사학위는 언제 받을지를 장담할 수 없는 마당에 선뜻 발을 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 애매한 위치에 있는 대학원생 신분

지난해 국내 대학원을 졸업한 석·박사 학위취득자 수는 9만9185명이었다. 석사 8만3046명, 박사 1만6139명이다. 20년 전인 2000년 5만3379명이었던 연간 석·박사 학위취득자 수의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는 아직 교육당국이 해당 통계 집계를 완료하지 않았지만, 역대 최초로 10만명 선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그러나 당장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취업 한파와 함께 그동안 대학원 내부에 자리 잡고 있던 해묵은 문제들이 더욱 심각한 지경에 이르면서 국내 학문 연구 생태계가 붕괴될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전망 또한 나오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와 함께 박사과정 첫 학기를 시작한 서모씨(30)도 올해 봄학기 개강 전까지 다니던 연구실을 나올지 말지 수도 없이 망설였다. “인터넷에 보면 대학원생은 지도교수 꾐에 걸려든 노예처럼 그려지는데, 대학원 오기 전에 어느 정도 각오를 했기 때문에 사실 그 문제는 그리 대수롭지 않았다”는 서씨는 “연구과제 하나도 못 따오는 연구실에 있다 보니 일한 대가만이라도 받는 노예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학기 등록금만 면제받는 교내 조교 업무를 맡았을 뿐, 생활비는 따로 벌어야 하는 상황을 맞으며 학업을 마칠 수 있을지 걱정됐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분명히 교내 행정업무까지 보는 직원 가까운 위치에 있으면서도 은행에서 자취방 이사를 위한 보증금 대출조차 받을 수 없는 불안정한 지위에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흔들렸다.

대학원생은 돈을 내고 대학원 강의를 들을 때 학생 지위를 인정받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조교 등 행정업무에 참여하거나 연구과제를 수행하며 경제적 대가를 받을 때는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기 어려운 묘한 위치에 있다. 그래서 조직된 대학원생노동조합도 이들이 일하는 한에서는 그만큼의 지위를 보장하라는 단순한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출범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조지부의 강태경 정책위원장은 “법적으로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생기는 문제는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수준의 문제를 넘어 건강보험 가입이나 은행 대출 등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며 “물론 당연한 지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학문 후속세대가 성장하기 어려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연간 10만명씩 석사 이상의 고학력 인재가 배출되는 시대가 왔지만, 이 추세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데는 더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지난 10년 동안 배출된 석·박사 학위취득자는 67만명을 넘는다. 그러나 연도별로 보면 2010년도까지는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다 2015년 무렵부터 점차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고, 대학원 입학자 수 기준으로 보면 아예 감소세로 돌아섰다. 즉 현재 정점을 찍고 있는 대학원생 수가 올해 졸업자 수 10만명 돌파라는 기록과 함께 하락세로 접어들면 대학원생 감소로 나타나는 학문 생태계의 위기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 학문 생태계 위기 가속화 우려

전문가와 학계 관계자들은 그동안 한국사회가 성장하면서 석·박사 배출 역시 늘어나긴 했으나 이들 고학력 인력이 갈 만한 마땅한 일자리가 부족해진 탓에 결국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국내 신규 박사학위 취득자 조사’ 최신통계를 보면 신규 석·박사학위 취득자 중 취업에 성공한 비율은 박사 71.8%(2020년 기준), 석사 52.4%(2018년 기준)에 그쳤다. 특히 박사학위 취득자 중 과반인 53.9%가 대학에서 자리를 잡고 연구를 계속하기를 희망하나 학령인구 감소로 전국의 대학이 구조조정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연구를 지속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백원영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국내 박사 인력은 증가하고 있지만, 고학력자를 위한 일자리가 많지 않아 하향취업하고 있다”며, “고급인력 양성 시스템 및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직종 개발 등의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의 대학 졸업 비율은 다른 나라보다 높지만, 대학원까지 학업을 계속해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그만큼의 능력을 발휘할 공간을 얻기는 힘든 형편이다. 그 결과 한국 청년층의 석·박사 이수율은 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및 조사대상 44개국 가운데 33위에 그쳤다. OECD 평균인 15%에 비하면 12%포인트 낮은 수치다. 대학 진학률은 높아도 전문적인 연구에 뛰어들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한국의 사회·경제적 환경이 반영된 통계다.

게다가 이미 석사를 거쳐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고 연구자의 길을 결심한 이들이 교수 자리를 얻기 전까지 생계를 지탱하기 위해 맡던 시간강사 자리도 줄어들어 위기는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강사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보장하려는 취지로 개정된 ‘고등교육법’(일명 시간강사법)이 2019년부터 시행됐지만, 대학이 강사 일자리 수를 유지하도록 하는 강제방안이 미흡했던 탓이다.

결국 학문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요건들이 하나하나 무너지는 상황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특히 기초학문을 중심으로 붕괴는 가속화되고 있다. 김한별 서강대 교수는 “강사를 뽑는 과정에서 경력이 중요한 기준이 되다 보니 갓 박사학위를 따고 강의를 시작하려는 신규 강사들은 경쟁에서 밀려 강의 하나 맡기가 어려운 형편”이라며, “새로운 학문 후속세대가 지속적으로 배출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순수학문은 더욱 심각한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경향신문, 2021년 0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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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옥 (Jongox Lim)


-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학과 학사. [지리교육학전공]

-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학과 석사. [지리교육학전공]

- 부산대학교 대학원 사회교육학과 교육학박사. [지리교육학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