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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중 1명이 고령자인 나라, 세상은 어떻게 변하나 -1
일본의 경로우대는 70세부터, 할인은 있어도 공짜는 없다

일본 인구에서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20%를 넘겼다. 최신 통계(2020년 9월)에서는 28.7%로 압도적인 세계 1위를 기록했다. 그 뒤를 이탈리아(23.3%), 포르투갈(22.8%), 핀란드(22.6%), 그리스(22.3%) 등이 잇는다. 일본은 명실상부하게 ‘4명 중 1명은 노인’의 기준을 넘어선 유일한 나라인 셈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병원에서 창 밖을 내려다보는 노인. 고령화는 세계적 추세이지만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특히 빠르다. 동아일보DB

○어린이용 풀장이 노인들 걷기 훈련 장소로

도쿄에서 연수중이던 2004년 여름방학, 동생네 가족이 한국에서 놀러왔다. 8살짜리 2명과 5살짜리 1명을 풀어놓을 곳을 찾다가 평소 헬스장으로 이용하던 구립(區立) 스포츠센터가 떠올랐다. 그곳 수영장에는 어린이용 얕은 풀도 있다. 어른 400엔(약 4175원), 초등생 이하는 100엔이면 이용할 수 있으니 예산도 가볍다.

하지만 꼬맹이들을 끌고 수영장에 들어선 순간 오산이었음을 깨달았다. 어린이용 풀에서는 노인들의 걷기 운동 수업이 한창이었다. 30명도 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줄 지어 강사의 구령에 맞춰 무릎 위로 찰랑거리는 물속을 걸어 다녔다. 관절이 아픈 노인들에게 수중 운동이 좋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결국 아이들을 어른용 풀 가장자리에서 잠깐 놀게 하다가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용 풀장이 노인들에게 할애되고 어린이는 놀 곳이 없게 된 현실, ‘이게 바로 저출산 고령사회의 민낯이구나’고 실감했다. 그러고 보니 이 스포츠센터에서 어린이를 본 기억이 없었다. 그곳에 수영장이 있다는 것만 알고, 수업시간표 같은 걸 확인해볼 생각을 못한 내 잘못이 컸다. 통계를 찾아보니 2004년 당시 일본의 고령인구 비율은 약 19%였다. 참고로 한국은 2019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15.7%였고 2025년에 20%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약자석, 섣부른 자리 양보는 언감생심

노인이 많아지면 확실히 도시 풍경이나 편의시설 등이 바뀐다. 다만 일본의 경우 노인의 특권 같은 건 허용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전철이건 버스건 경로석 표시가 있긴 한데, 그 자리를 찾아 앉으려는 노인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젊은이가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려해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문화 자체가 없어 상대가 당황하기 쉽고, 섣불리 양보했다가는 ‘사람을 뭘로 보느냐’며 불쾌해하지 않을지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일본 지자체들은 대개 70세 이상 고령자들을 위해 각종 할인제도를 지원하고 있다. 지방 소도시의 버스 정류장.

학교 교육부터 생활스포츠를 중시하는 편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필사적으로 운동을 한다. 도심과 외곽 곳곳에 자리한 스포츠센터(대개 헬스장과 휴게실, 사우나, 수영장이 일체화된 시설들)은 은퇴한 어르신들의 집결지가 됐다. 일부 이용객은 도시락을 싸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설을 이용하기도 한다. 항간의 우스갯소리로 모 헬스장 게시판에 “난 피트니스클럽에 가입한 것이지 양로원에 온 게 아니다”라는 고객 항의문이 붙자 헬스장 측은 “우리는 모든 연령대 고객에게 이용되길 원한다”고 응수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동네 도서관과 대형 쇼핑몰, 카페, 문화센터도 노인들의 동선 권역이다. 지역에 자리한 대학들은 지역민들을 위한 청강 프로그램을 대거 운영한다. 도쿄 스가모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하라주쿠’라는 노인 상권이 형성돼 있다. 실버 세대에게 필요한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집중된 이곳은 거리 전체가 현대화하지 않아 인기가 높은 지역이다. 재미있는 것은 어디건 고령자들이 적은 액수나마 기분 좋게 지갑을 열고 돈을 쓴다는 점이다.

‘노인들의 하라주쿠’라 불리는 도쿄 스가모의 지조(地藏) 거리. 전통적인 상가의 모습을 유지한 거리에 빼곡히 들어선 상점들은 어르신 취향의 상품들로 가득하다. 출처: flickr.com

○정년 후 10년분이면 충분했던 노후자금, 이젠 40년분 준비해야

몇 년 전 일본의 절약 풍조를 다룬 요미우리신문 기획기사에서 재미있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고급 백화점 지하 반찬코너 점주의 말이었는데 “콩자반 5알만 팔 수 없겠느냐”는 노부인이 있더라는 얘기였다.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불필요한 낭비를 하지 않고 맞춤형 소비를 한다’는 차원이었겠지만 조금씩 소분(小分)해 파는 데 익숙한 일본에서도 화제가 돼 버렸다.

평균수명의 급속한 연장과 저출산, 인구 감소까지 맞물리면서 일본 사회 전체가 당혹감에 빠져 있다. 과거 60세 무렵에 정년퇴직해 70세 정도면 사망하는 사이클에 맞춰 마련된 연금과 노후 재정 모델이 평균수명 90대를 바라보면서 뿌리부터 흔들렸다.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정년퇴직 후 10년분이면 충분했던 노후자금을 40년분까지 준비해야 하게 된 것이다. 노후 충분한 자산도 가족도 없이 장수만 하게 될 가능성을 상상하며 “재수 없으면 120살까지 살지 모른다”는 말도 나온다. 이 경우 노후자금은 60년분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가 되니 말이다.

이렇게 일본 노인들의 최대 공포의 대상이 ‘지나친’ 장수와 노후 파산, 고독사가 되면서 이들은 좀처럼 은퇴를 하지 못한다. 2019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의 취업률은 24.9%로 전체 취업자 중 13.3%였다. 사장이나 자영업을 제외한 고령 취업자 중 77.3%가 비정규직이었다.

인구 감소와 도시 집중은 전국의 집값 등 자산 가치 하락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국에 빈집이 늘어 전체 주택의 13.6%인 846만 가구에 달한다(일본 총무성 통계국 ‘2018년 토지·주택 통계 조사’). 빈집은 동네 황폐화를 가속화한다. 상속받은 부모의 집은 팔리지 않고 세금과 관리비만 들어가는 애물단지로 변했다.(일본의 부동산 사정은 다음 기회에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인구 감소와 도시집중으로 일본 전국에 방치된 빈집이 전체 주택의 13.6%인 846만 가구에 달한다. 자녀들에게 상속된 빈집은 팔리지도 않고 관리비만 드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사진: 오다와라시 홈페이지

○경로우대는 70세부터, 할인은 있어도 공짜는 없다

최근 서울교통공사가 올해에만 1조6000억원의 자금 부족을 예고하면서 65세 이상 고령자의 무임승차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어르신들이 무료로 인천공항까지 가서 바캉스를 즐기고 수도권 전철을 이용해 온양온천까지 다닌다고 하니 승차 거리도 상당해 보인다.

교통비 비싸기로 악명 높은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일본에도 경로우대는 있다. 대개 만 70세 이상 노인에게 지자체나 교통회사들이 ‘외출 지원’이란 이름 아래 할인을 적용해준다. 어르신들의 건강과 활력을 위해서는 외출이 중요하고 이를 사회가 응원하다는 취지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무료’는 없다. 50엔, 100엔이라도 반드시 자기 돈을 쓰게 한다.

일본의 고령자 외출지원 제도는 각 지자체가 운영한다. 가령 도쿄도에서는 70세 이상 주민이 2만210엔을 내고 ‘실버패스’를 사면 도가 운영하는 지하철(전체 지하철과 전철 중 일부)과 버스에 한해 1년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오사카시의 경우도 70세 이상 주민이 경로우대패스를 발급받는데, 오사카시내 지하철과 노선버스에 한해 회당 50엔에 승차할 수 있다. 단 여기에는 깨알 같은 단서가 붙는다. 이용객들로 붐비기 일쑤인 이케아 매장,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 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적용에서 제외된다. 교토시나 나고야시처럼 노인들의 소득에 따라 경로패스 가격을 연간 1000~1만5000엔 사이에 차등 적용하는 지자체도 있다.

“나는 원코인버스” “우리 가족은 버스 카드” “난 매일 장보러 갈 때 자유이용권”…. 아오모리시의 노인 외출지원 제도 홍보물. 노인의 외출은 생활의 활력과 건강을 위해서도 적극 권장된다. 출처: 아오모리시 홈페이지

일본 전국 52개 시의 교통지원 제도를 모아놓은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31개 시가 70세 이상부터, 10개 시가 65세 이상부터 교통비를 지원했다. 나머지 11개 시는 지원 제도 자체가 없거나 폐지됐다. 이런 지역은 버스회사들이 자체적으로 고령자 자유이용권을 판매하는데 월 이용권 6500엔 수준으로 가격이 꽤 높다.

이런 지원 제도들을 들여다보노라면 지자체별로 오랜 세월에 걸친 고심과 축적 끝에 깨알 같은 정책들이 만들어졌음을 느끼게 된다. 예산이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돈 한 푼 쓰는데 벌벌 떠는 공무원들의 태도에서 일본이 부자 나라라는 실감은 전혀 들지 않을 정도다.

○무임승차 도입 당시 한국의 평균 수명 67.38세, 2030년 기대 수명 85.2세

한국의 노인 교통요금 우대제도는 1980년 70세 이상 노인 요금 50% 할인으로 시작해 1982년 대상 연령이 65세 이상으로 낮아졌고, 1984년 100% 무료로 확대됐다. 다만 제도가 도입된 1980년대 4%에 불과했던 고령자 인구는 날로 늘어 2025년이면 20%를 넘기게 된다.

사실 UN자료에 따르면 1980~1985년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67.38세로 65세는 명실상부한 노인이었다. 하지만 요즘 고령자들은 그 나이면 청년처럼 활동이 활발하다. 이렇다보니 서울지하철 재정에도 부담을 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고령자들의 사회활동을 지원한다는 큰 뜻은 살리되 서울 교통의 부담도 줄일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가령 경로우대 적용 연령대를 올리거나 소득에 따라 할인율을 달리 하는 방안, 무료승차의 거리 범위를 줄이는 방안, 일부 본인 부담 도입 등 방법은 여럿 있을 것이다. 고령자들 입장에서도 그래야 젊은이들 보기에 떳떳할 것 같다.

서울 한 지하철역에서 개표구를 통과하는 노인들. 일본 대중교통에도 경로우대는 있지만 대개 70세 이상에게 본인 부담의 일부를 지원해주는 형태를 띤다. 사진: 서울교통공사

○한국의 고령화 속도, 세계 1위

UN기준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 20%를 넘기면 초고령 사회라고 한다. 고령화 속도는 국가별로 편차가 크다. 프랑스나 독일, 미국이 7%에서 20%로 가기까지 각기 143년, 77년, 88년이 걸린 데 비해 일본은 35년이 걸렸다. 지난해 9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이면 고령자 20%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 사회에서 초고령 사회까지 가는데 25년 걸리는 셈이다.

한국의 현재 고령자 비중은 15.7%(2019년 기준)로 일본보다는 한참 젊다. 하지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저 수준의 낮은 출산율 탓에 늙어가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2045년 이후엔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고령 국가가 될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까.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
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동아일보, 2021년 02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