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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공군 게일 할보르센 대령, 101세를 일기로 별세,    베를린 봉쇄 당시 독일 아이들에 사탕·초콜릿 투하
"그가 떨어뜨린 건 간식 아닌 '자유'의 씨앗이었다"
1948∼1949년 베를린 공수작전에 참여해 ‘사탕 폭격기’ 조종사로 유명해진 미 공군의 게일 할보르센 예비역 대령. 사진은 93세이던 2013년 조종복 차림으로 미 공군의 옛 수송기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미 공군 홈페이지
1940년대 후반 ‘냉전’의 시작을 알린 베를린 봉쇄 당시 독일 어린이들한테 사탕과 초콜릿 등을 실어나른 미국 공군 조종사 게일 할보르센이 16일(현지시간) 유타주(州)의 자택에서 10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이었던 미국과 독일은 할보르센의 선행에 힘입어 전후 가장 두터운 우방국이자 동맹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18일 AP통신에 따르면 예비역 공군 대령인 고인은 집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숨을 거뒀다. 2차대전 참전용사이자 세계적 유명인이기도 했던 고인을 떠나보내며 유타주 스펜서 콕스 주지사는 “그가 어딘가 천국의 문 뒤에서 사탕을 건넬 것임을 안다”고 추모했다.

1948년 당시 2차대전 패전국 독일은 미국·영국·프랑스·소련(현 러시아) 4대 전승국에 의해 분할된 상태였다. 미국 등 서방 3개국이 점령한 지역은 곧 합쳐져 ‘서독’이 되었지만 소련 점령구역 ‘동독’은 사실상 별개의 공산주의 국가로 변해가고 있었다. 동독 내에 위치한 베를린도 동서로 분단된 가운데 서독에서 멀리 떨어진 서베를린은 마치 ‘섬’처럼 고립돼 있었다.

소련의 스탈린은 이같은 서베를린의 지리적 취약성을 활용해 서독, 그리고 서독을 지원하는 미국·영국 등 서방 진영을 굴복시키려는 못된 계략을 꾸민다. 1948년 6월을 기해 서독과 서베를린을 잇는 도로, 철도 등 모든 육상 교통로를 차단해버린 것이다. 전 세계에 동서 냉전의 본격화를 알린 베를린 봉쇄(1948년 6월∼1949년 5월)의 시작이었다.

당시 서베를린 시민들은 서독에서 보내는 식량과 연료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미·영은 봉쇄를 무력화할 돌파구로 ‘공수작전’을 동원한다. 육상 교통로는 막혔지만 하늘길은 열려 있는 만큼 미·영 공군이 보유한 수송기에 서베를린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실어 보내기로 한 것이다.

2차대전 내내 목숨 걸고 독일 공군과 싸운 베테랑 조종사 할보르센도 이 베를린 공수작전에 투입됐다. 당시 28세로 중위 계급장을 달고 있던 할보르센은 거의 매일 C-47, C-54 등 수송기를 몰고 서베를린으로 날아가 싣고 온 보급품을 전달하는 일을 했다. 그때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던 서베를린 어린이들의 참상을 목격한 할보르센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생필품과 별개로 사탕, 초콜릿, 건포도 같은 군것질거리를 소형 낙하산에 매달아 마치 폭탄을 투하하듯 땅에 떨어뜨린 것이다.

베를린 공수작전에 동원된 미 공군의 C-54 스카이마스터 수송기가 서베를린 어린이들을 위해 사탕 등 군것질거리가 매달린 소형 낙하산을 투하하는 모습. 미 공군 홈페이지
“봉쇄된 서베를린에서 힘겹게 지내는 어린이들에게 작지만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머물고 있던 공군기지에서 동료 조종사들과 함께 사탕, 초콜릿, 건포도 등을 모았고 입지 않는 옷으로 작은 낙하산을 만든 후 모은 사탕과 초콜릿 등을 헝겊에 싸 매달았죠.”(게일 할보르센)

독일 아이들은 하루종일 미군 비행기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간식이 낙하하면 ‘우와’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할보르센이 조종한 수송기에는 ‘사탕 폭격기(Candy Bomber)’라는 귀여운 별명이 붙었다.

베를린 봉쇄 당시 7살 꼬마였던 독일 여성 메르세데스 빌트는 공수작전 70주년이었던 지난 2019년 미 공군의 주선으로 생전의 할보르센과 만난 자리에서 그를 스스럼없이 ‘초콜릿 아저씨(Chocolate Uncle)’라고 불렀다.

“정상적인 서베를린 주민 어느 누구도 소련 지배를 받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소련 정권은 나치와 다를 바 없었고 우리 모두 소련군을 두려워했거든요. 그때 초콜릿 아저씨(할보르센)가 저 같은 서베를린 꼬마들한테 사탕을 투하한 건 아주 훌륭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속으로 ‘이분이야말로 인류애를 상징하는 평화의 대사 같은 분이구나’ 하고 생각했죠. 베를린 공수작전에 참여한 모든 조종사 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메르세데스 빌트)

고인이 서베를린 시가지에 투하한 건 미국에선 값싸고 흔한 사탕, 초콜릿, 건포도였다. 하지만 독일 아이들은 이를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위대함과 동일시했다. 고인이 독일 땅에 뿌린 ‘자유’의 씨앗은 꼭 40년이 지난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이어졌고, 이듬해 독일이 통일되며 공산주의 동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탕 폭격기’를 몰고 하늘나라로 마지막 비행을 떠나며 독일, 그리고 베를린을 지날 때 고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세계일보, 2022년 0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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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옥 (Jongox Lim)


-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학과 학사. [지리교육학전공]

-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학과 석사. [지리교육학전공]

- 부산대학교 대학원 사회교육학과 교육학박사. [지리교육학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