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1946년 7월 5일 프랑스 파리의 한 수영장. 한 여성 모델이 등과 배가 훤히 드러나고 최소한 가릴 곳만 가린 수영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이 모습에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죠.
이 수영복을 만든 사람은 프랑스 디자이너 루이 레아르. 그는 신문지를 도안해 프린트한 수영복을 만들었지만 정작 입어줄 모델을 구하지 못했다고 해요. 배꼽을 드러내는 것은 외설로 취급됐기 때문에 아무도 나서지 않았던 거죠.
레아르는 파리에서 활동하던 19세 누드 댄서인 미셸린 베르나르디니를 모델로 고용했고, 베르나르디니는 그의 수영복을 입고 대중 앞에 나서서 최초의 비키니(Bikini) 모델이 됐죠.
'비키니'는 무슨 뜻일까
비키니가 등장하기 4일 전 미국은 서태평양 마셜제도의 한 섬에서 핵실험을 단행했습니다. 더 정확하게 이곳은 고리 모양으로 산호초가 배열된 환초(環礁)인데, 이름이 바로 '비키니'였어요.
미국은 지역주민을 이주시킨 후 핵실험을 단행했는데,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곳은 순식간에 황무지로 변했죠.
이곳에선 1946년부터 1958년까지 최초의 수소폭탄 실험(1952년)을 포함해 총 67회의 핵실험이 실시됐어요. 히로시마 원자폭탄 위력의 7천 배에 해당하는 여러 실험은 이곳의 지질, 자연환경, 주민 건강에 큰 영향을 미쳤죠.
비키니 환초는 핵실험의 위력을 보여주는 중요하고 직접적인 증거를 보존하고 있고, 히로시마ㆍ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이후 인류가 '핵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재차 확인해준다며 지난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죠.
아무튼 이곳이 수영복과 무슨 상관이냐고요? 레아르는 자신이 만든 수영복이 미국의 핵폭탄 실험같이 주목받길 기대하며 '비키니'란 이름을 붙였다고 해요.
레아르는 "결혼반지 사이로 빼낼 수 없으면 진짜 비키니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는 최대한 단출하게 수영복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이 담겨 있죠.
'외설'이라던 비키니, 어떻게 대중화됐을까
비키니가 첫선을 보인 당시만도 유럽과 미국의 여성들은 보통 발목까지 가리는 치마를 입고 수영을 했습니다. 다리를 드러낸 수영복만 입어도 외설적이라고 여기던 시절이었죠.
교황청은 비키니를 '부도덕한 옷'이라며 비난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 벨기에, 호주에선 비키니 착용을 금지했습니다. 소련은 자본주의 퇴폐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고 혹평했죠.
하지만 비키니는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1956년 영화에서 입고 나오며 화제가 됐고, 1961년에는 미국 가수 브라이언 하이랜드가 비키니를 주제로 부른 노래가 히트하면서 점차 대중화됐습니다.
특히 1962년 영화 '007 살인번호'의 '본드걸' 우슬라 안드레스는 이 영화에서 비키니를 입고 나와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비키니 유행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동방예의지국' 한국에선 어땠을까
우리나라에 비키니가 언제 들어왔는지는 불명확하지만 1960년대 초반이란 추정이 많습니다. 1961년 의류업체인 백화사가 판매한 '상어표 수영복'이 투피스 스타일이었죠.
처음엔 비키니를 두고 '여성 해방의 상징' '해괴망측' 등 논쟁이 있었고, 상인들은 진열을 꺼리기도 했지만 비키니는 점차 대중화됐습니다.
비키니는 '탱키니'(상의가 탱크톱 형태), '마이크로키니'(초미니 비키니), '모노키니'(허리나 가슴 부분을 드러낸 원피스 형태) 등 다양하게 변화했죠.
다양한 디자인의 수영복이 선보이는 오늘날, 비키니는 여름철 패션 아이템 중 하나가 됐습니다(연합뉴스, 2022년 07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