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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20공신회맹축 왕실 문서 국보 지정.jpg



조선왕실 문서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가 7일 국보로 지정예고됐다. 17세기 후반 숙종 시절 정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정국상황을 엿볼 수 있는 사료다. 더불어 왕실유물중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압도적 크기로 제작돼, 조선 후기 왕실 공예품의 백미라는 평가도 있다. 보물 제 1513호로, 가로 길이가 25m에 달한다. 문화재청은 "학술적 가치와 예술성 면에서 국보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는 1680년(숙종 6년) 8월 30일 열린 왕실 의식 '회맹제(會盟祭)'를 기념하기 위해 1694년(숙종 20년) 녹훈도감에서 제작한 왕실 문서다.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린 이름인 '공신' 중 개국공신부터 보사공신에 이르는 역대 20종의 공신이 된 인물들과 그 자손들이 참석해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는 1680년 회맹제 거행 당시의 회맹문과 보사공신을 비롯한 역대 공신들, 그 후손들을 포함해 총 489명의 명단을 기록한 회맹록, 종묘에 올리는 축문, 제문으로 구성됐다. 축의 말미에 제작 사유와 제작 연대를 적었고 시명지보(施命之寶)라는 국새를 마지막으로 찍어 왕실 문서로서 완전한 형식을 갖췄다.

긴 문서의 양 끝은 붉은색과 파란색 비단을 덧대고 위아래를 옥(玉)으로 장식한 축으로 마무리해 왕에게 직접 보고하는 어람용 문서답게 매우 화려하다. 조선 시대에는 공신회맹제가 있을 때마다 어람용 회맹축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1910년까지 문헌을 통해 전래가 확인된 회맹축은 3건에 불과하다.


문화재청은 어람용이자 형식상, 내용상 완전한 형태로 전래된 회맹축은 이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가 유일하다고 밝혔다.

이날 문화재청은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 '구미 대둔사 경장'을 보물로 각각 지정 예고했다. '문경 봉암사 마애여래좌상'등 조선 시대 불교문화재 3건도 보물로 지정했다. (파이낸셜뉴스, 2021년 01월 10일)